좋은 시

노을

시인묵객 2007. 4. 21. 13:01

 


 

저녁노을 /도종환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산마루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저녁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뿜어져나오는 해의 입김이
선홍빛 노을로 번져가는 광활한 하늘을 봅니다.

 

당신도 물들고 있습니까?

 

저를 물들이고 고생대의 단층 같은 구름의 물결을 물들이고
가을산을 물들이고 느티나무 잎을 물들이는 게 저무는 해의
손길이라는 걸 알겠습니다.

 

구름의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는 노을처럼
나는 내 시가 당신의 얼굴 한쪽을 물들이기를 바랐습니다.

 

나는 내 노래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당신을 물들이고
사라지는 저녁노을이기를, 내 눈빛이 한 번만 더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저녁 종소리이길 소망했습니다.

 

시가 끝나면 곧 어둠이 밀려오고 그러면 그 시는 내 최후의
시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내 시집은 그때마다
당신을 향한 최후의 시집이 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덜었습니다.

 

최후를 생각하는 동안 해는 서산을 넘어가고 한 세기는 저물고
세상을 다 태울 것 같던 열정도 재가 되고 구름 그림자만
저무는 육신을 전송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스러져가는 몸이 빚어내는 선연한 열망!

 

동살보다 더 찬란한 빛을 뿌리며 최후의 우리도 그렇게 저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무는 시간이 마지막까지 빛나는 시간이기를,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하늘 위에 마지막 순간까지
맨몸으로도 찬연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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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비 오는 날엔  / 양애희


네가 올래
내가 갈까

오늘같이, 해종일 비 오는 날엔
불현듯 ,

너에게 빗물처럼 흐르고 싶을때 있더라.

 

바람에 실린 한점 꽃잎같은 그리움
가슴팍에 웅크린채로

오직, 너 하나만 그리다가

오직, 너 때문에

내 사랑 통화중엔
빗물 아래 마론 인형 떨듯

눈빛 닿은 자리마다엔
웃음 아닌 웃음이 우산처럼 펼쳐지는 날  있더라.

 

너 때문에 울기도
너 때문에 웃기도
웃고 싶을때마다엔
웃게 해주고

때론, 울지도 못하게 하는

너.

 

네 마음에 나를 담아
따뜻한 그리움 한잔
 

      쪼-르-륵                  

넘치지 않을 낯익은 가슴 커피포트
들끓이는 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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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모습


강인오

 

어머님

새벽 내 모종하시던

사루비아 붉은 꽃계단에 앉으면

사루비아 꽃물 빨던 내

손등에 벌 한마리 날아와 앉았다가

이내 수그린 꽃잎 위에서 부산을 떨고

꿀 찾아 온 벌에게

나 잠시라도 꽃이었는지

 

꽃처럼

한번이라도

숨 멈추고 짙은 생 봉오리 내밀었는지

 

벌의 행로, 헌신

때로

 

궤적을 이탈하는 비행에도 다시

온몸으로 시간을 날개짓한 고통들 모두

 

바람을 저어

그 속에 묻혀져 갈 것을.

 

길 잃으면

유유히 어디로든 흐르는 바람이 될까

 

열정의 꽃대 놓으면 진정

자유로워질까

 

저만치, 아네모네 노란 꽃잎 밟고

바람이 가네

 

앞산 어깨 훌쩍 딛고 넘는

구름처럼

아버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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