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그 여자네 집

시인묵객 2007. 4. 20. 22:38


 

 

그 여자네 집 -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 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은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자네 집

어느날인가
그 어느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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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피는 게 아냐
그리움이 터진 거지
 
 
내 온 몸의
피가
피가
열꽃 되어
터진 게야.
 
 
꽃비로
당신 적시려
혼을 활활
태운 게야.
 
 
-이구학-
 
 
 
 
사랑은
하는 게 아냐..
외로움이 들킨거지.
 
 
내 온 몸의
피가
피가
눈물 되어
젖은 게야.
 
 
나홀로
당신 지키려
마음을 활활
태운 게야.
 
 
 -이 형-

 

 

 


 

 

마 음
 
 
 
 옛날
 
석공들은

 부처를 돌로 깎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돌 속에 있는 부처를 찿아 냈다.

 

 

 
돌 속에 있는 부처와

석공의 마음이 만나

 각기 다른 모양의 불상이 얻어졌다.

 

우리는

남들이 좋아하는 미래의 일을 찿기보다는

내 마음속에 있는

나의 것을 만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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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불
 
 
맹인이 한밤중에
한 손에는 머리위의 물동이를 잡고,
다른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행인이 기이하게 여기자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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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물은 조용히 흐른다.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반쯤 채운 물항아리와 같이 철렁거리며 쉬 흔들리지만,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이 평화롭고 고요하다.

 

물의 교훈을 배워라.
울퉁불퉁한 계곡과 협곡 속에서
시냇물과 폭포는 큰 소리를 내지만,
거대한 강은 조용히 흐른다.

빈 병은 소리가 요란하지만
꽉 찬 병은 마구 흔들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바보는 덜그럭 거리는 냄비와 같고,
현자는 고요하고 깊은 연못과 같다.

가득 찬 것은 소리를 내지 않듯,
내면의 뜰이 꽉 찬 사람은 침묵한다.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쓰고, 말을 많이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애써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고
다만 행동으로 나타낼 뿐이다.

꽉 찬 사람은
자신 스스로도 이미 충만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말이 많은 사람은
쉬 믿음이 가지 않는다.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드러낼 것이 많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대로 자신의 못난 속 내를 비출 뿐이다.

말이 없는 사람은 묵묵한 침묵 가운데에서
자신의 빛을 한없이 드러내고 있는 사람이다.

얕은 시내는 큰 소리를 내지만,
거대한 강은 조용히 흐른다.

깨어있을 때는
꼭 필요한 말만
꼭 필요한 순간에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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