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성탄제

시인묵객 2013. 12. 24. 19:30

 

 

 

 

 

성탄제 / 김 종 길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성탄제>(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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