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겨울 날

시인묵객 2013. 12. 26. 19:30

 

 

 

 

겨울 날 / 곽 재 구

 

 

겨우내 우리들은산을 털어

토끼를 몰고 개울 얼음을 깨

잠든 피리를 잡아 소주추렴을 하였다

 

곱은 손으로 성솔까지를 꺽어들고

숯막의 낮은 추녀와 쌓인 눈이

맞닿을 때까지 고함을 지르며

날카로운 얼음조각이 뒹구는 개울까에서

발에 동상이 드는 줄도 모르고

산 너머 너머를 바라보았다

 

마을의 겨울꿈들은 언제나

서편 하늘에 붉은 노을로 걸리고

그 겨우내 우리는 한 페이지의

새마을 잡지도 읽지 않았다

 

뱉어도 뱉어도 줄창 쏟아지는

하늘의 젖빛 가래

가짓대를 삶은 물에

동산이 든 손발을 적셔주면서

어머님은 낡은 옷고름에 눈물을 찍어올리고

감옥소에 갇힌 동생에게서도

소를 팔아 변호사를 사러 간 아버지에게서도

편지 한 통 눈발 속에 넘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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