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생각 / 안 도 현
나보다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 앞에서는
무조건 무릎 꿇고 한 수 배우고 싶다
복숭아나무가 복사꽃을 흩뿌리며
물위에 點點이 우표를 붙이는 날은
나도 양면괘지에다 긴 편지를 쓰고 싶다
벼랑에 기를 쓰고 붙어 있는, 허리 뒤틀린
조선소나무를 보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주고 싶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멀리 보내는
밤나무 아래에서는 아무 일 아닌 것같이 나도 관계를 맺고 싶다
나 외로운 날은 外邊山 호랑가시나무 숲에 들어
호랑가시나무한테 내 등 좀 긁어 달라고, 엎드려 상처받고 싶다
(·시인,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