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일기 / 이 해 인
1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굴뚝이 하나 있지.
너를 향한 그리움이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다
노래가 되는 너의 집이기도 한 나의 집.
이 하얀 집으로 너는 오늘도 들어오렴,
친구야.
2
전에는 크게, 굵게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작게, 가늘게 내리는 이슬비처럼
조용히 내게 오는 너.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는
쉬임없이 나를 적셔준다.
3
소금을 안은 바다처럼
내 안엔 늘 짜디짠 그리움이 가득하단다.
친구야.
미역처럼 싱싱한 기쁨들이
너를 위해 자라고 있단다.
파도에 씻긴 조약돌을 닮은
나의 하얀 기도가 빛나고 있단다.
4
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구나.
네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안타까운 내 마음이
나의 몸까지도 아프게 하는 거
너는 알고 있니?
어서 일어나 네 밝은 얼굴을 다시 보여주렴.
내게 기쁨을 주는 너의
새 같은 목소리도 들려주렴.
5
내가 너를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너도 보고 싶니,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처럼
너도 좋아하니,
나를 알면서도 언제나 다시 묻는 말
우리가 수없이 주고받는
어리지만 따뜻한 말
어리석지만 정다운 말
6
약속도 안 했는데 똑같은 날 편지를 썼고,
똑같은 시간에 전화를 맞걸어서
통화가 안되던 일, 생각나니
서로를 자꾸 생각하다보면
마음도 쌍둥이가 되나보지
7
'내 마음에 있는 말을 네가 다 훔쳐가서
나는 편지에도 더 이상 쓸 말이 없다'며
너는 종종 아름다운 불평을 했지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쓰려고
고운 편지지를 꺼내놓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무슨 말을 쓸거니
어느새 먼저 와서 활짝 웃는 너의 얼굴
몰래 너를 기쁘게 해주려던 내 마음이
너무 빨리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나는 더 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구나
(·수녀 시인,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