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우정 일기

시인묵객 2012. 8. 26. 19:30

 

 

 

 

 

우정일기 / 이 해 인

 

 

1

내 마음속엔 아름다운 굴뚝이 하나 있지.

너를 향한 그리움이 하얀 연기로 피어오르다

노래가 되는 너의 집이기도 한 나의 집.

이 하얀 집으로 너는 오늘도 들어오렴,

친구야.

 

2

전에는 크게, 굵게 쏟아지는 소낙비처럼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야기하더니

지금은 작게, 가늘게 내리는 이슬비처럼

조용히 내게 오는 너.

네가 어디에 있든지 너는

쉬임없이 나를 적셔준다.

 

3

소금을 안은 바다처럼

내 안엔 늘 짜디짠 그리움이 가득하단다.

친구야.

미역처럼 싱싱한 기쁨들이

너를 위해 자라고 있단다.

파도에 씻긴 조약돌을 닮은

나의 하얀 기도가 빛나고 있단다.

 

4

네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구나.

네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안타까운 내 마음이

나의 몸까지도 아프게 하는 거

너는 알고 있니?

어서 일어나 네 밝은 얼굴을 다시 보여주렴.

내게 기쁨을 주는 너의

새 같은 목소리도 들려주렴.

 

5

내가 너를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너도 보고 싶니,

내가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처럼

너도 좋아하니,

나를 알면서도 언제나 다시 묻는 말

우리가 수없이 주고받는

어리지만 따뜻한 말

어리석지만 정다운 말

 

6

약속도 안 했는데 똑같은 날 편지를 썼고,

똑같은 시간에 전화를 맞걸어서

통화가 안되던 일, 생각나니

서로를 자꾸 생각하다보면

마음도 쌍둥이가 되나보지

 

7

'내 마음에 있는 말을 네가 다 훔쳐가서

나는 편지에도 더 이상 쓸 말이 없다'며

너는 종종 아름다운 불평을 했지

오랜만에 네게 편지를 쓰려고

고운 편지지를 꺼내놓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무슨 말을 쓸거니

어느새 먼저 와서 활짝 웃는 너의 얼굴

몰래 너를 기쁘게 해주려던 내 마음이

너무 빨리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나는 더 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구나

 

(·수녀 시인,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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