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그 한마디 말

시인묵객 2012. 8. 23. 19:30

 

 

 

 

 

그 한마디 말 / 김 장 호

 

 

 

중학생 아들에게 용돈 줄 때마다

봉투에 넣어주는 쪽지

"이 아비는 너를 믿는다"

그 옛날 외양간 소똥 치우던 손으로

내 종아리 매질했던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문

막걸리 냄새나던 당신의 모국어

세상과 맞서게 만든 금쪽같은 말

문득 새벽잠 깨면 콧등이 시큰해지는 말

언젠가 내 아들의 등 뒤에서 힘이 될 그 한마디 말

 

 

출근길 양복 주머니에 든 고교생 딸의 쪽지

"아빠, 사랑해요"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응원

지갑 속 복권보다 더 힘나는 말

울리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듯

농사꾼 내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

입가에 맴돌기만 했던 말

후회는 언제나 막차를 타고 오는 것

아, 미루고 미루다 억울하게 하지 못한 그 한마디 말

 

 

늦은 밤 현관 밖을 들락거리던 아내

중학생 아들에게 현관문 열어주며

내색 않고 던지는 첫마디

"밥은 먹었니?"

이슥한 밤 아버지 몰래 대문 따주시던

내 어머니 생전에 하시던 말

시외 전화할 때마다 꺼내시던 첫마디

김치찌개 냄새나던 당신의 모국어

자식에 대한 사랑과 염려가 녹아 있던

아랫목 이불 밑 밥그릇 같은 그 한마디 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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