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작은 것을 위하여

시인묵객 2012. 8. 20. 19:30

 

 

 

 

작은 것을 위하여 / 이 기철

 

 

굴뚝새들은 조그맣게 산다

강아지풀 속이나 탱자나무 숲 속에 살면서도 그들은 즐겁고

물여뀌 잎 새 위에서도 그들은 깃을 묻고 잠들 줄은 안다

작은 빗방울 일부러 피하지 않고

숯 더미 같은 것도 부리로 쪼이며 발톱으로 어루만진다

 

인가에서 울려오는 차임벨 소리에 놀란 눈을 뜨고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에 가슴은 떨지만

밤과 느릅나무 잎 새와 어둠 속의 별빛을 바라보며

그들은 조용한 화해와 순응의 하룻밤을 새우고

짧은 꿈속에 저들의 생애의 몇 토막 이야기를 묻는다

 

아카시아 꽃을 떨어뜨리고 불어온 바람이 깃털 속에 박히고

박하 꽃 피운 바람이 부리 끝에 와 머무는 밤에도

그들의 하루는 아둠 속에서 깨어나

또 다른 날빛을 맞으며 가을로 간다

 

여름이 마무도 돌봐 주지 않는 들녘 끝에

개비름 꽃 한 점 피웠다 지우듯이

가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산기슭 싸리나무 끝에

굴뚝새들의 단음의 노래를 리본처럼 달아둔다

 

인간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인간 다음에 이 지상에 남을 것들을 위하여

굴뚝새들은 오리나무 뿌리 뻗는 황토 기슭에

그들의 꿈과 노래를 보석처럼 묻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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