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시인묵객 2011. 10. 11. 19:00

 

 

 

 

 

 

 

 

 

 

쓸쓸함이 따뜻함에게 / 고 정 희

 

 

 

 

 

언제부턴가 나는

따뜻한 세상 하나 만들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거리에서 돌아와도, 거기

내 마음과 그대 마음 맞물려 넣으면

아름다운 모닥불로 타 오르는 세상,

 

 

불 그림자 멀리 멀리

얼음장을 녹이고 노여움을 녹이고

가시 철망 담벼락을 와르르 녹여

부드러운 강물로 깊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싶었습니다

 

 

그대 따뜻함에 내 쓸쓸함 기대거나

내 따뜻함에 그대 쓸쓸함 기대어

우리 삶의 둥지 따로 틀 필요 없다면

곤륜산 가는 길이 멀지 않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내 피가 너무 따뜻하여

그대 쓸쓸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쓸쓸함과 내 따뜻함이

물과 기름으로 외롭습니다

 

내가 너무 쓸쓸하여

그대 따뜻함 보이지 않는 날은

그대 따뜻함과 내 쓸쓸함이

화산과 빙산으로 좌초합니다

 

 

오 진실로 원하고 원하옵기는

그대 가슴 속에 든 화산과

내 가슴 속에 든 빙산이 제풀에 만나

곤륜산 가는 길 트는 일입니다

 

 

 

한 쪽으로 만장봉 계곡물 풀어

우거진 사랑 발 담그게 하고

한 쪽으로 선연한 능선 좌우에

마가목 구엽초 오가피 다래눈

저너기 떡취 얼러지 나물 함께

따뜻한 세상 한 번 어우르는 일입니다

 

 

 

그게 뜻만으로 되질 않습니다

따뜻한 세상에 지금 사시는 분은

그 길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름  (0) 2011.10.13
간이역에서  (0) 2011.10.12
당신은 누구십니까?  (0) 2011.10.10
이제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은  (0) 2011.10.09
아네스의 노래  (0) 2011.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