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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 사랑 - 도종환 -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에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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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게 / 김 석 규
바람으로 지나가는 사랑을 보았네
언덕의 미루나무 잎이
온몸으로 흔들릴 때
사랑이여 그런 바람이었으면 하네
붙들려고
가까이서 얼굴을 보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만 떠돌려 하네
젖은 사랑의 잔잔한 물결
마음 바닥까지 다 퍼내어 비우기도 하고
스치는 작은 풀꽃 하나
흔들리게도 하면서
사랑이여,
흔적없는 바람이었으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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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항아리의 가치
조금 깨어져 금이가고 오래된,
못생긴 물항아리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항아리의 주인은
다른 온전한 것들과 함께 그 깨어진 항아리를
물을 길어오는데 사용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주인은
깨어진 물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온전한 물항아리와 똑같이 아끼며 사용했더랍니다.
깨어진 물항아리는
늘 주인에게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온전치 못하여 주인님에게 폐를 끼치는구나.
나로 인해 그 귀하게 구한 물이 새어버리는데도
나를 아직도 버리지 않으시다니….'
어느날, 너무 미안하다고 느낀 깨어진 물항아리가
주인께 물었습니다.
"주인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고 새로운 온전한 항아리를
구하지 않으시나요.
저는 별로 소용 가치가 없는 물건인데요."
주인은 그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물항아리를 지고 계속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길을 지나면서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아라."
그제야 물항아리는
그들이 늘 물을 길어 집으로 걸어오던 길을 보았습니다.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듯
싱싱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주인님, 어떻게 이 산골 길가에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있을까요?"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메마른 산 길가에서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세상에는 버릴것이 하나도 없다(소용없는 것이란 없다)'는
노자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일화입니다.
무엇이든 다 자기 자리가 있고
자기가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이지요.
언뜻 보기에는 무용지물로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그 어떤 것도 경우에 따라,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나름대로 쓰임이 있다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