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불혹의 연가

시인묵객 2010. 12. 12. 16:28


 

 

 

 

 

 

 

 

불혹의 연가  /   문  병란

 

 

 

 

 

 

어머니

이제 어디만큼 흐르고 있습니까 

 

목마른 가슴을 보듬고

어느 세월의 언덕에서

눈감으면 두 팔 안으로

오늘도 핏빛 노을은 무너집니다

 

삼남매 칠 남매

마다마다 열리는 조롱박이

오늘은 모두 다  함박이 되었을까

모르게 감추어 놓은 눈물

이다지도 유유히 흐르는 강

이만치 앉아서 바라보며

나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보셔요, 어머니

나주 벌만큼이나 내려가서

3백 리 역정 다시 뒤돌아보며

풍성한 언어로 가꾸던 어젯날

넉넉한 햇살 속에서

이마 묻고 울고 싶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흐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새끼 네 명을 키우며

중년에 접어든 불혹의 가을

오늘은 당신 곁에 와서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하지 못한

남은 이야기가 있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흐르는 강

누군가 소리쳐 부르고 싶은

이 간절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목마른 정오의 언덕에 서서

내 가슴 가득히 채우고 싶은

무슨 커다란 슬픔이 있어

풀 냄새 언덕에 서면

아직도 목메어 흐르는 강

나는 아득한 곳에서 회귀하는

내 청춘의 조각배를 봅니다

 

이렇게 항상 흐르게 하고

이렇게 간절히 손을 흔들게 하는

어느 정오의 긴 언덕에 서서

어머니, 오늘은

꼭 한번 울고 싶은 슬픔이 있습니다

꼭 한번 쏟고 싶은 진한 눈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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