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연가 / 문 병란
어머니
이제 어디만큼 흐르고 있습니까
목마른 가슴을 보듬고
어느 세월의 언덕에서
눈감으면 두 팔 안으로
오늘도 핏빛 노을은 무너집니다
삼남매 칠 남매
마다마다 열리는 조롱박이
오늘은 모두 다 함박이 되었을까
모르게 감추어 놓은 눈물
이다지도 유유히 흐르는 강
이만치 앉아서 바라보며
나직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보셔요, 어머니
나주 벌만큼이나 내려가서
3백 리 역정 다시 뒤돌아보며
풍성한 언어로 가꾸던 어젯날
넉넉한 햇살 속에서
이마 묻고 울고 싶은
지금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흐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
새끼 네 명을 키우며
중년에 접어든 불혹의 가을
오늘은 당신 곁에 와서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 있습니다
아직도 다하지 못한
남은 이야기가 있어
출렁이며 출렁이며 흐르는 강
누군가 소리쳐 부르고 싶은
이 간절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목마른 정오의 언덕에 서서
내 가슴 가득히 채우고 싶은
무슨 커다란 슬픔이 있어
풀 냄새 언덕에 서면
아직도 목메어 흐르는 강
나는 아득한 곳에서 회귀하는
내 청춘의 조각배를 봅니다
이렇게 항상 흐르게 하고
이렇게 간절히 손을 흔들게 하는
어느 정오의 긴 언덕에 서서
어머니, 오늘은
꼭 한번 울고 싶은 슬픔이 있습니다
꼭 한번 쏟고 싶은 진한 눈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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