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봄비

시인묵객 2007. 4. 5. 09:04


 

봄비 -고정희

 

가슴 밑으로 흘려보낸 눈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이뻐라
순하고 따스한 황토 벌판에
봄비 내리는 모습은 이뻐라
언 강물 풀리는 소리를 내며
버드나무 가지에 물안개를 만들고
보리밭 잎사귀에 입맞춤하면서
산천초목 호명하는 봄비는 이뻐라
거친 마음 적시는 봄비는 이뻐라
실개천 부풀리는 봄비는 이뻐라

오 그리운 이여
저 비 그치고 보름달 떠오르면
우리들 가슴속의 수문을 열자
봄비 찰랑대는 수문을 쏴 열고
꿈꾸는 들판으로 달려나가자
들에서 얼싸안고 아득히 흘러가자
그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리
다만 둥그런 수평선 위에서
일월성신 숨결 같은 빛으로 떠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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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복    - 봄비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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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 종이배 사랑 **   
 
내 너 있는 쪽으로 흘려 보내는 저녁 강물빛과
네가 나를 향해 던지는 물결소리 위에
우리 사랑은 두 척의 흔들리는 종이배 같아서
무사히 무사히 이 물길 건널지 알 수 없지만

아직도 우리가 굽이 잦은 계곡물과
물살 급한 여울목 더 건너야 하는 나이여서
지금 어깨를 마주 대고 흐르는 이 잔잔한 보폭으로
넓고 먼 한 생의 바다에 이를지 알 수 없지만

이 흐름 속에 몸을 쉴 모래톱 하나
우리 영혼의 젖어 있는 구석구석을 햇볕에 꺼내 말리며
머물렀다 갈 익명의 작은 섬 하나 만나지 못해

이 물결 위에 손가락으로 써두었던 말 노래에 실려
기우뚱거리며 뱃전을 두드리곤 하던 물소리 섞인 그 말
밀려오는 세월의 발길에 지워진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내가 쓴 그 글씨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음을

내 너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그물을 들고 먼 바다로 나가는 시간과
뱃전에 진흙을 묻힌 채 낯선 섬의
감탕밭에 묶여 있는 시간 더 많아도

내 네게 준 사랑의 말보다 풀잎 사이를 떠다니는 말
벌레들이 시새워 우는 소리 더 많이 듣고 살아야 한다 해도
잊지 말아다오 지금 내가 한 이 말이
네게 준 내 마음의 전부였음을

바람결에 종이배에 실려 보냈다 되돌아오기를 수십번
살아 있는 동안 끝내 이 한마디 네 몸 깊은 곳에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해도 내 이 세상 떠난 뒤에 너 남거든
기억해다오 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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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의 마을을 꿈꾼다 -[유하] 

 

내 몸 물처럼 출렁이는 꿈을 꿉니다
내 몸 그대에게 물처럼 흐르는 꿈을 꿉니다
나 그대 앞에서 물처럼 투명한 꿈을 꿉니다
물처럼 투명한 내 몸 속, 물처럼 샘솟는 내 사랑 보입니다
내 사랑에 내가 놀라 화들짝 물방울로 맺힙니다
드맑은 그리움 온통 무거워지면
물방울로 맺힌 내 몸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수만 가지로 샘솟는 길을 따라 내가 흩어져 흘러갑니다
그러나 물방울의 기억이 그대 눈빛처럼 빛나는 시냇가에

내 사랑 고요히 모이게 합니다
오오, 달비늘로 미끄러지는 내 사랑
갈대 밑둥을 가만히 흔들고 지나갈 뿐입니다
바위 틈에 소리없이 스미고 스밀 뿐입니다
내 몸 투명한 물이기에
이 세상 어느 것보다 낮게 흐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비켜갑니다 그대마저도 비켜갑니다
그 비켜감의 끝간 데, 지고한 높이의 하늘이 있습니다
놀라워라, 그 순간 그대 가슴속에 끝없이
범람하고 있는 내 사랑 봅니다
나 그대 몸 속에서 오래도록 출렁입니다
나 그대 시내 같은 눈을 보며 물의 마을을 꿈꿉니다
그 물의 마을, 꿈꾸는 내 입천장에서 말라붙습니다
내 몸 물처럼 출렁이다 증발되듯 깨어납니다
오늘도 그대를 비켜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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