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신발 / 고창남
인도에는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면
떠올랐다 가라앉은 먼지들과
가볍게 부풀어 올랐을 세상의 호들갑이
풀어진 끈을 갈고리처럼 엮어 꽉 조여 맨다.
만년설처럼 쌓여만 가는 아득한 먼지 속에서
태양은 너무 용의주도하고
그림자는 자주 길 밖으로 흘러내린다.
인도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다.
바람만 불어도 가시가 돋쳐 구멍 숭숭 뚫리고
나는 다만 그날의 일기를 기록한다.
지구의 표면을 닦는 순례자의 발걸음
덜거덕거리는 신발이 몸 안의 길을 따라 걷는다.
때론, 갠지스 강이든가 어디든가 가닿지 못한 그리움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를 때
우리라는 존재는 우리가 소망하던 우리가 아니다.
오래된 신발에서 오래된 잉크냄새가 난다.
평생 써 내려가야 할 미완의 경전
어제 걷던 길을 오늘도 걷는다.
인도에는 부처가 있다.
신발장 문을 열 때마다 온 생이 몸을 뒤척인다.
[201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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