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오래된 신발 / 고창남

시인묵객 2015. 9. 6. 08:00

 

 

 

오래된 신발 / 고창남

 

 

인도에는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면

떠올랐다 가라앉은 먼지들과

가볍게 부풀어 올랐을 세상의 호들갑이

풀어진 끈을 갈고리처럼 엮어 꽉 조여 맨다.

 

만년설처럼 쌓여만 가는 아득한 먼지 속에서

태양은 너무 용의주도하고

그림자는 자주 길 밖으로 흘러내린다.

 

인도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다.

바람만 불어도 가시가 돋쳐 구멍 숭숭 뚫리고

나는 다만 그날의 일기를 기록한다.

 

지구의 표면을 닦는 순례자의 발걸음

덜거덕거리는 신발이 몸 안의 길을 따라 걷는다.

 

때론, 갠지스 강이든가 어디든가 가닿지 못한 그리움이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를 때

우리라는 존재는 우리가 소망하던 우리가 아니다.

 

오래된 신발에서 오래된 잉크냄새가 난다.

평생 써 내려가야 할 미완의 경전

어제 걷던 길을 오늘도 걷는다.

 

인도에는 부처가 있다.

신발장 문을 열 때마다 온 생이 몸을 뒤척인다.

 

[2015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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