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읽는 어머니 / 안정환
아들 공부 잘 했으면 됐지
어미 글 모르는 게 무슨 흉이노
노인대학 가서도 늘 큰소리치는
문맹이신 우리 어머니
한글은 몰라도 시내버스 타시다
용케 아라비아 숫자는 익히셨다
어설픈 내 시집 나오는 날
먼저 한 권 드렸더니
책 표지판 한참 들여다 보신다
출판사 시집 순번 '15'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정색하신다
니 책에다 우리 동네서 증심사 가는
시내버스 15번을 왜 써 놨노
그날 종일 화두 하나 떠나질 않는다
어쩌면 내 시집이 단 하루라도
시내버스 15번이 될 수 있을까
도시 끝에서 끝까지 되풀이 오가며
승차권 하나에 사람들 편하게 나를 수 있을까
러시아워에 급한 인생길 막혀도
가만히 두 눈 감고 몽상하게 할 수 있을까
저녁이나 주말이면 한 사람이라도 더
시끄럽고 먼지투성이인 시장에서 꺼내어
조용한 산사 아래로 데려다 줄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 몰두하다 문득
우리 어머니 이미 어설픈 내 시집
다 읽으신 게 틀림없다 생각한다
15번 시내버스라니 가당찮다는 듯한
얼굴 표정 조심스레 살피며
불쑥, 엉뚱한 한 말씀 드린다
어머니, 시내버스 한대 사드릴까요?
- 시문학 2004년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