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산골 이발소

시인묵객 2011. 9. 15. 20:03

 

 

 

 

 

 

 

산골 이발소   /  이 범 노

 

 

 

 

팔십 년 묵은 감나무 아래

통나무 의자를 놓고

머리를 깎습니다.

 

 

이빨 빠진 기계가 지나간 뒤

더벅머리 깎이는 아이들의 머리는

뒷산에 떨어지는 알밤처럼

여물었습니다.

 

 

껄 밤송이 같은 아이들이

주머니엔 알밤이 가득

땡감을 깨물면서 머리 깎으러

모여옵니다.

 

달은 매일 밤 통통 여물어 가고

내일은 추석.

 

감은 햇볕에 데어 붉었습니다.

밤은 기쁨에 겨워

가슴을 헤치고 여물었습니다.

 

노란 감나무 잎 날리는 바람은

시원해 좋은데,

들지 않는 기계를 놀리느라고

아저씨 이마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열립니다.

 

 

깎은 아이 웃고,

깎는 아이 눈물 짜고,

내일은 추석.

오랜만에 부산한 산골 이발소엔

여무는 가을 하늘이

한 아름 다가옵니다.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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