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이발소 / 이 범 노
팔십 년 묵은 감나무 아래
통나무 의자를 놓고
머리를 깎습니다.
이빨 빠진 기계가 지나간 뒤
더벅머리 깎이는 아이들의 머리는
뒷산에 떨어지는 알밤처럼
여물었습니다.
껄 밤송이 같은 아이들이
주머니엔 알밤이 가득
땡감을 깨물면서 머리 깎으러
모여옵니다.
달은 매일 밤 통통 여물어 가고
내일은 추석.
감은 햇볕에 데어 붉었습니다.
밤은 기쁨에 겨워
가슴을 헤치고 여물었습니다.
노란 감나무 잎 날리는 바람은
시원해 좋은데,
들지 않는 기계를 놀리느라고
아저씨 이마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열립니다.
깎은 아이 웃고,
깎는 아이 눈물 짜고,
내일은 추석.
오랜만에 부산한 산골 이발소엔
여무는 가을 하늘이
한 아름 다가옵니다.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