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시편 / 천 양 희
강 끝에 서서 서쪽으로 드는 노을을 봅니다
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
오래되어도 썩지 않는 것은 하늘입니다
하늘이 붉어질 때
두고 간 시들이 생각났습니다
피로 써라 그러면......
생각은 새떼처럼 떠오르고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어 마른풀 몇 개를 분질렀습니다
피가 곧 정신이니......
노을이 피로 쓴 시 같아
노을 두어 편 빌려 머리에서 가슴까지
길게 썼습니다
길다고 다 길이겠습니까
그 때 하늘이 더 붉어졌습니다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하라......
내 속으로 노을 뒤편이 드나들었습니다
쓰기 위해 써버린 많은 글자들 이름들
붉게 물듭니다
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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