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푸른나무 7

시인묵객 2009. 4. 25. 10:59


 

 

 

 

 

푸른 나무 7   /    김 용 택

 

 

 

오늘도 집에 가다

나는 네 뿌리에 앉아

서늘한 네 몸에

더운 내 몸을 기댄다

토끼풀꽃 애기똥풀꽃이 지더니

들판은 푸르고

엉겅퀴꽃 망초꽃이 피었구나

좋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앉아

저 꽃 저 들을 보니 오늘은

참 좋다

 

이 세상을 살아오다

누구나 한번쯤

인생의 허무를 느낄 때가 있었듯이

내 청춘도 까닭없이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냥 외로웠다

이유 없이 슬펐다

까닭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던

오늘 같은 어느날

텅 빈 네 그늘 아래 들어

더운 내몸을 기댔다

아, 서늘하게 식어오던 내 청춘의 모서리에 풀꽃이 피고

눈 들어 너의 그 수많은 잎들을 나는 보았다

온몸에 바람이 불고

살아보라 살아보라 살아보라

나뭇잎들이 수없이 흔들렸다

 

살고 싶었다

지금도 피는 저 엉겅퀴와 망초꽃을

처음 보던 날이었다

 

오늘도 나는 혼자 집에 가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네 뿌리에 앉는다

이 세상 어느 끝으로 뻗어

이 세상 어느 끝에 닿아 있을 것만 같은

네 가지 가지에 눈을 주고

이 세상 어둠속을 하얗게 뻗어

어둠의 끝에 가 닿을 것만 같은

네 뿌리에 앉아

나는 내 눈과 내 몸을 식힌다.

 

 

 

푸른 나무 8

 

집, 나라, 그리고 시

 

길가에 홀로 서 있는

너는 한 편의 시다

네 몸에서는 달이 솟고

소쩍새가 날아와

밤새워 운다

마을과 마을 중간

작은 들 가에 홀로 서 있는

네 푸른 가지는 논밭에 가 닿아 있고

네 아래로

그늘과 빛이 찾아들어

온갖 풀꽃들이

햇빛으로 그늘로 핀다

지금 눈감아도 훤히 떠오르는

엉겅퀴꽃 찔레꽃 붓꽃 달맞이꽃

빨간 산딸기 노란 마타리 솜다리

희디흰 망초꽃 희고 노란 들국화

밥티 입에 문 며느리밥풀꽃

너의 수많은 가지 가지 잎잎에는

온갖 벌레들이 또 그렇게

찾아와 살림을 차린다

너는

집이다

나라다 시다.

 

 

 

푸른 나무 9

 

바삐 흐르는 저문 물 보면

괜히 가슴 두근거리며

하던 일 서둘러지고

갑자기 그대가 더 보고 싶어집니다

눈길 끝으로 멀리 물을 따라가보면

나는 물 따르지 못하고

저기 가는 먼 물 끝만 봅니다

바삐바삐 흐르는 저문 물 보면

가을이 깊어지고 세월도 깊어지는지

나는 압니다

오늘도 내 그리움 다 실은

물소리 다 그대에게 갑니다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며

이 푸른 잎 다 늘리고 다 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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