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나무 7 / 김 용 택
오늘도 집에 가다
나는 네 뿌리에 앉아
서늘한 네 몸에
더운 내 몸을 기댄다
토끼풀꽃 애기똥풀꽃이 지더니
들판은 푸르고
엉겅퀴꽃 망초꽃이 피었구나
좋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앉아
저 꽃 저 들을 보니 오늘은
참 좋다
이 세상을 살아오다
누구나 한번쯤
인생의 허무를 느낄 때가 있었듯이
내 청춘도 까닭없이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냥 외로웠다
이유 없이 슬펐다
까닭없이 죽고 싶었다
그러던
오늘 같은 어느날
텅 빈 네 그늘 아래 들어
더운 내몸을 기댔다
아, 서늘하게 식어오던 내 청춘의 모서리에 풀꽃이 피고
눈 들어 너의 그 수많은 잎들을 나는 보았다
온몸에 바람이 불고
살아보라 살아보라 살아보라
나뭇잎들이 수없이 흔들렸다
살고 싶었다
지금도 피는 저 엉겅퀴와 망초꽃을
처음 보던 날이었다
오늘도 나는 혼자 집에 가다
네 몸에 내 몸을 기대고
네 뿌리에 앉는다
이 세상 어느 끝으로 뻗어
이 세상 어느 끝에 닿아 있을 것만 같은
네 가지 가지에 눈을 주고
이 세상 어둠속을 하얗게 뻗어
어둠의 끝에 가 닿을 것만 같은
네 뿌리에 앉아
나는 내 눈과 내 몸을 식힌다.
푸른 나무 8
집, 나라, 그리고 시
길가에 홀로 서 있는
너는 한 편의 시다
네 몸에서는 달이 솟고
소쩍새가 날아와
밤새워 운다
마을과 마을 중간
작은 들 가에 홀로 서 있는
네 푸른 가지는 논밭에 가 닿아 있고
네 아래로
그늘과 빛이 찾아들어
온갖 풀꽃들이
햇빛으로 그늘로 핀다
지금 눈감아도 훤히 떠오르는
엉겅퀴꽃 찔레꽃 붓꽃 달맞이꽃
빨간 산딸기 노란 마타리 솜다리
희디흰 망초꽃 희고 노란 들국화
밥티 입에 문 며느리밥풀꽃
너의 수많은 가지 가지 잎잎에는
온갖 벌레들이 또 그렇게
찾아와 살림을 차린다
너는
집이다
나라다 시다.
푸른 나무 9
바삐 흐르는 저문 물 보면
괜히 가슴 두근거리며
하던 일 서둘러지고
갑자기 그대가 더 보고 싶어집니다
눈길 끝으로 멀리 물을 따라가보면
나는 물 따르지 못하고
저기 가는 먼 물 끝만 봅니다
바삐바삐 흐르는 저문 물 보면
가을이 깊어지고 세월도 깊어지는지
나는 압니다
오늘도 내 그리움 다 실은
물소리 다 그대에게 갑니다
나는 평생을 그렇게 살며
이 푸른 잎 다 늘리고 다 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