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우리가 첫눈처럼

시인묵객 2009. 1. 31. 10:09


 

 

 

 

 

 

 

우리가 첫눈처럼    /   김 구 식


 

 

우리가 첫눈처럼
누군가의 처진 어깨를 감쌀 수 있었다면
여윈 가슴이 더 따뜻해졌으리라

 

허물어져 가는 어느 집 처마 끝 가만히 쌓였다가
아궁이에 장작불 터져 가듯 함박꽃 같은 웃음을
피워 번지게 할 수만 있었다면
뭉쳐서도 녹아서도 즐거웠으리라

 

아, 햇살의 발길에 채여 질퍽해지고
얼어붙는 저 어스름 저녁
엉덩방아 찐 누군가의 입방아에 오르더라도

우리가 첫눈처럼 누군가의
깜박이는 설레임이 될 수만 있었다면

 

망설임 없이 차가운 가지 끝을 쓸어보다가
매서운 바람이 몰아가는 어둑한 구석 어딘가
잠자코 박혀서도 좋았으리라

 

높이도 깊이도 헤아릴 것 없이
숨죽인 울음으로 쏟아져 내려도 좋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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