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적하리의 봄

시인묵객 2008. 2. 12. 09:39


 

 

 

 


 

 

 

적하리의 봄 / 도 종 환


 

 

 

님이여 당신은 아프게 아프게
제게 오십니다
이 땅에 한 포기 풀로 저를
있게 하시고
모진 바람으로 제 소중한 모든 것들
 거두어 가신 뒤에 깊고 긴 어둠으로
오랜 날 덮어두셨다가
언 가슴 안고 울부짖는 소리도 모른 채 두셨다가
풀리는 햇살로 천천히 제게 오십니다

 

제 살아온 반생의 언덕을
제 손으로 갈아엎게 하시고
잘못 디딘 발자국도 제 손으로 지우게 하시고
굵게 굵게 흘리는 눈물 발등에 넘칠 때
빗줄기를 먼저 보내 조용히 씻게 하시고야
보리밭 위로 조금씩 햇살 던지시며 제게 오십니다

 

님이여 당신은 먼 밤의 끝으로 이어오는
새벽처럼 오십니다
님이여 당신은 제가 이 땅의
어느 외진 구석에 풀 입으로 있어도
저를 가득 담아 두시는 아침 하늘로 오십니다

 

겨울 산골짝을 고적히 달려간 밤 기차의
기적처럼 제 가슴을 크게 울리고
오래도록 남아 있는 푸른 핏줄의
맥박으로 오십니다

 

쓰라림과 외로움 견디노라 갈라져
터진 껍질 벗겨 맑은 속가지 드러나게 한 뒤
해묵은 슬픔과 함께 계시는
아아로운 포도밭의 불길로 오십니다

 

님이여 당신은 멀고 긴 길을  돌아 제게 오십니다
님이여 당신은 제 옆의 늘 푸른 나무들을
먼저 흔들어 보시고
저를 가만히 흔들며 당신 가까이로 오라 하십니다
좀 더 가까이 오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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