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새해 아침/ 송수권

시인묵객 2019. 1. 1. 01:00

 

 

새해 아침 / 송수권

 

새해 아침은 불을 껐다 다시 켜듯이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답답하고 화나고 두렵고

또 얼마나 허전하고 가난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지난밤 제야의 종소리에 묻어둔 꿈도

아직 소원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외로웠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억울했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슬펐습니까? 그 위에 하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얼마나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까?

 

그 위에 우레와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그 위에 침묵과 같은 눈을 내리게 하십시오

낡은 수첩을 새 수첩으로 갈며

떨리는 손으로 잊어야 할 슬픈 이름을

두 줄로 금긋듯

그렇게 당신은 아픈 추억을 지우십시오

 

새해 아침은

찬란한 태양을 왕관처럼 쓰고

끓어오르는 핏덩이를 쏟아놓으십시오

새해 아침은

날밤 시집온 신부가 아침나절에는

저 혼자서도 말문이 터져 콧노래를 부르듯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 오십시오.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년시 / 조병화  (0) 2019.01.08
새해 첫날의 소망 /이해인  (0) 2019.01.04
송년인사/오순화  (0) 2018.12.31
세모의창가에 서서/ 이해인  (0) 2018.12.28
어린 천사들/ 송용구  (0) 2018.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