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의 창가에 서서 / 이해인
하얀 배추 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하여
헛말을 많이 했던 빈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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