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이 한 해에도 / 이해인
노을빛으로 저물어 가는
이 한 해에도 제가 아직 살아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할 수 있음을 사랑하고,
祈禱하고, 感謝할 수 있음을
들녘의 볏단처럼 엎디어 感謝드립니다.
날마다 새로이 太陽이 떠오르듯
오늘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제 마음의 하늘에 歡喜로 떠오르시는 주님
12月만 남아 있는 한 장의 달력에서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時間의 소리들은 쓸쓸하면서도
그립고 애틋한 餘運을 남깁니다.
아쉬움과 後悔의 눈물 속에
焦燥하고 不安하게 서성이기보다는
所重한 옛 親舊를 對하듯 淡淡하고
平和로운 微笑로 떠나는
한 해와 握手하고 싶습니다.
色동설빔처럼 곱고 華麗했던
새해 첫날의 다짐과 決心들이 많은 部分
退色해 버렸음을 認定하며
부끄러운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淸淨한 삶을 志向하는 求道者이면서도
제 마음을 갈고 닦는 일에
最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虛榮과 驕慢과 慾心의 때가 낀
제 마음의 窓門은 게을리 닦으면서
다른 이의 窓門이 더럽다고 非難하며
가까이 가길 꺼려한 僞善者 였습니다.
처음에 지녔던 眞理에 對한 渴望과
사랑에 대한 熱望은 祈禱의 밑거름이 不足해
타오르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沈黙의 어둠 속에서 빛의 言語를
끌어내시는 生命의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이 膳物로 주신
家族, 親知, 이웃들에게 밝고 부드러운
生命의 말보다는 칙칙하고 거친 죽음의 말을
더 많이 건네고도 제때에 容恕를 請하기보다
辨明하는 일에 더욱 바빴습니다.
제가 말을 할 때 마다, 주님 제 안에 고요히 머무시어
해야 할 말과 안 해야 할 말을 分別하는 知慧를 주시고
남에 關한 쓸데없는 말로 時間을 浪費하지 않게 하소서.
참된 사랑만이 世上과 人間을 救援할 수 있음을
당신의 삶 自體로 보여 주신 주님.
제 日常의 江기슭에 눈만 뜨면 조약돌처럼
널려 있는 사랑과 奉仕의 期會들을 지나쳐 간
저의 懶怠함과 無關心을 容恕 하십시오.
절절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暗鬱한 時代 탓을 남에게만 돌리고
自身은 義人인 양 錯覺하는 저의 傲慢함을 容恕 하십시오.
全的으로 投身하는 行動的인 사랑보다
앞뒤로 재어보는 觀念的인 사랑에 빠져
傷處받는 冒險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랑하는 方法도 極히 選擇的이며
偏狹한 옹졸함을 버리지 못한 채로
普遍的인 人類愛를 잘도 부르짖었습니다.
여기에 다 羅列하지 못한
저의 숨은 죄와 잘못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당신과 이웃으로부터 받은 恩惠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제 작은 머리로는 다 헤아릴 수 없고
제 작은 그릇엔 다 담을 수 없는 無限大이며
無限量의 주님.
한 해 동안 걸어온 巡禮의 길 위에서
同行者가 되어 준 제 이웃들을 記憶하며
사람의 고마움과 삶의 아름다움을
처음인 듯 새롭게 하는 소나무 빛
送年이 되게 하소서.
저무는 이 한 해에도
솔잎처럼 푸르고 香氣로운 希望의 노래가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와
希望의 새해로 이어지게 하소서.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월 / 이외수 (0) | 2018.01.04 |
---|---|
새해 첫날의 소망/ 이해인 (0) | 2018.01.01 |
당신이 오신 날/ 이해인 (0) | 2017.12.24 |
연인의 자격/ 유안진 (0) | 2017.12.15 |
쓸쓸 / 문정희 (0) | 2017.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