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시월/ 나희덕

시인묵객 2016. 10. 1. 08:00

 

 

시월 / 나희덕

 

산에 와 생각 합니다

바위가 산문을 여는 여기

언젠가 당신이 왔던 건 아닐까 하고

 

머루 한 가지 꺾어

물위로 무심히 띄워 보내며

붉게 물드는 계곡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하고

 

잎을 깨치고 내려오는 저 햇살

당신 어깨에도 내렸으리라고

산기슭에 걸터앉아 피웠을 담배 연기

저 떠도는 구름이 되었으리라고

 

새삼 골짜기에 싸여 생각하는 것은

내가 벗하여 살 이름

머루나 다래, 물든 잎사귀와 물,

산문을 열고 제 몸을 여는 바위,

도로지 ,청솔모, 쑥부쟁이 뿐이어서

당신 이름뿐이어서

 

단풍 곁에서 있다가 나도 따라 붉어져

물위로 흘러내리면

 

나 여기 다녀간 줄 당신은 아실까

잎과 잎처럼 흐르다 만나질수 있을까

이승이 아니라도 그럴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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