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여름일기 / 이해인

시인묵객 2016. 8. 1. 08:00

 

 

 

여름일기 1 / 이해인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드려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

 

 

여름일기 2 / 이해인

 

오늘 아침 내 마음의 밭에는

밤새 봉오리로 맺혀있던

한 마디의 시어가

노란 쑥갓 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비와 햇볕이 동시에 고마워서

자주 하늘을 보는 여름

잘 익은 수박을 쪼개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초록의 기쁨이여

 

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도

수박처럼 둥글고 시원한

자유와 평화 가득한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다림질한 흰옷에

물을 뿌리며 생각합니다.

 

우물과 나태로 풀기 없던 나의 일상을

희망으로 풀 먹여 다림질해야 겠음을

 

지금쯤 바삐 일터로 향하는

나의 이웃을 위해

한 송이의 기도를 꽃 피워야 겠음을...

 

 

여름일기 3 / 이해인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담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여름일기 4 / 이해인

 

떠오르는 해를 보고

멀리서도 인사하니

세상과 사람들이

더 가까이 웃으며 걸어옵니다.

 

이왕이면 붉게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어둡고 차갑고 미지근한 삶은 죄가 된다고

고요히 일어주는 나의 해님

 

아아, 나의 대답은 말보다

먼저 또 오르는 감탄사일 뿐

둥근 해를 닮은 사랑일 뿐!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 헤는 밤/ 윤동주  (0) 2016.08.07
바다로 나가 볼까 / 이상호  (0) 2016.08.04
흐린 날에 쓰는 연가/ 황정순  (0) 2016.07.30
나무편지/ 박유라  (0) 2016.07.27
농가월령가 7월령  (0) 2016.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