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아내의 구두 / 박 정 원

시인묵객 2015. 4. 28. 19:30

 

 

 

 

 

아내의 구두 / 박 정 원

 

 

아내의 구두 굽을 몰래 훔쳐본다.

 

닳아 없어진 두께는 곧 아내가 움직였을 거리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쪽으로만 기대었던 굽이

다른 한쪽 굽을 더 깊게 파이게 했다

 

덜 파인 쪽에 힘을 주면 굽의 높이가 같아질까

나를 받아주기 위해 제 몸만 넓혀갔지

헐렁한 건강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구두

 

밑창을 갈면 왠지 낯설 것 같은 구두, 버리면

지나간 가난이 서릿발처럼 일어설 것 같아

신발장에 슬며시 들여 놓는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눈물 흘렸을 때

군말 없이 동행해주었던 구두

핼쑥해진 아내의 얼굴처럼 광택이 나지 않는 구두

 

아무렇게나 신어도 쑥쑥 들어가는 구두가

키를 맞추겠다면서

높은 구두는 고르지도 않던 아내에게

숫처녀 같은 구두 한 켤레 사주고 싶다.

 

(·시인, 충남 금산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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