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구두 / 박 정 원
아내의 구두 굽을 몰래 훔쳐본다.
닳아 없어진 두께는 곧 아내가 움직였을 거리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쪽으로만 기대었던 굽이
다른 한쪽 굽을 더 깊게 파이게 했다
덜 파인 쪽에 힘을 주면 굽의 높이가 같아질까
나를 받아주기 위해 제 몸만 넓혀갔지
헐렁한 건강 한 번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구두
밑창을 갈면 왠지 낯설 것 같은 구두, 버리면
지나간 가난이 서릿발처럼 일어설 것 같아
신발장에 슬며시 들여 놓는다.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넣으며 눈물 흘렸을 때
군말 없이 동행해주었던 구두
핼쑥해진 아내의 얼굴처럼 광택이 나지 않는 구두
아무렇게나 신어도 쑥쑥 들어가는 구두가
키를 맞추겠다면서
높은 구두는 고르지도 않던 아내에게
숫처녀 같은 구두 한 켤레 사주고 싶다.
(·시인, 충남 금산 출생)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잎의 고요 / 변 종 환 (0) | 2015.05.03 |
---|---|
오월 소식 / 정 지 용 (0) | 2015.04.30 |
봄맞이 꽃 / 김 윤 현 (0) | 2015.04.26 |
오는 봄 / 김 소 월 (0) | 2015.04.15 |
봄을 그리는 마음 / 고 진 숙 (0) | 2015.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