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면학의 서/ 양주동

시인묵객 2015. 1. 19. 19:30

 

 

 

 

 

 

 

면학(勉學)의 서(書) / 양주동

 

독서(讀書)의 즐거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東西) 전배(前輩)들의 무수(無數)한 언급(言及)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덧붙이랴. 좀 과장(課長)하여 말한다면,

그야말로 맹자(孟子)의 인생삼락(人生三樂)에 무름지기

'독서(讀書), 면학(勉學)'의 제 4일락(第四一樂)을 추가(追加)할 것이다.

진부(陳腐)한 인문(引文)이나

만인(萬人) 주지(周知)의 평범(平凡)한 일화(逸話) 따위는 일체 그만두고,

단적(端的)으로 나의 실감(實感) 하나를 피력(披瀝)하기로 하자.

 

열 살 전후 때에 논어(論語)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운운(云云)이 대성현(大聖賢)의 글의 모두(冒頭)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말씀이면 공자(孔子) 아닌 소, 중학생도 넉넉히 말함직하였다.

첫 줄에서의 나의 실망(失望)

그 밑의 정자(程子)인가의 약간 현학적(衒學的)인 주석(註釋)에 의하여

다소 그 도(度)를 완화(緩和)하였으나

논어의 허두(虛頭)가 너무나 평범하다는 인상(印象)은 오래 가시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후 배우고, 익히고, 또 무엇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생활이 어느덧 2, 30년,

그 동안에 비록 대수로운 성취(成就)는 없었으나,

몸에 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다시금 평범한 그 말이 진리(眞理)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정씨(程氏)의 주(註)는 워낙 군소리요,

공자의 당초(當初) 소박(素朴)한 표현이 그대로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현세(現世)와 같은

명리(名利)와 허화(虛華)의 와중(渦中)을 될 수 있는 한 초탈(超脫)하여,

하루에 단 몇 시, 몇 분이라도 오로지 진리와 구도(求道)에

고요히 침잠(沈潛)하는 여유(餘裕)를 가질 수 있음이,

부생백년(浮生百年), 더구나 현대인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물며, 난후(亂後) 수복(收復)의 구차(苟且)한 생활 속에서

그래도 나에게 삼척 안두(三尺案頭)가 마련되어 있고,

일수(一穗)의 청등(靑燈)이 의미한 채로 빛을 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전(日前)

어느 문생(門生)이 내 저서(著書)에 제자(題字)를 청하기로,

나는 공자의 이 평범하고도 고마운 말을 실감(實感)으로 서증(書贈)하였다.

 

독서란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지설(持說)이다. 세상에는 실제적(實際的) 목적을 가진,

실리실득(實利實得)을 위한 독서를 주장할 이가 많겠지마는

아무리 그것을 위한 독서라도, 기쁨 없이는 애초에 실효(實效)를 거둘 수 없다.

독서의 효과를 가지는 방법은 요컨대 그 즐거움을 양성(養成)함이다.

선천적(先天的)으로 그 즐거움에 민감(敏感)한 이야

그야말로 다생(多生)의 숙인(宿因)으로 다복(多福)한 사람이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독서에 재미를 붙여 그 습관을 잘 길러 놓은 이도,

그만 못지않은 행복한 족속(族屬)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현실파(現實派)에게나 이상가(理想家)에게나,

다 공통(共通)히 발견의 기쁨에 있다.

콜럼버스적인 새로운 사실(事實)과 지식의 영역(領域)의 발견도 좋고,

 "하늘의 무지개를 바로 보면 내 가슴은 뛰노나." 식의 워즈워스적인 영감(靈感),

경건(敬虔)의 발견도 좋고, 더구나 나와 같이, 에머슨의 말에 따라,

"천재(天才)의 작품에서 내버렸던 자아(自我)를 발견함"은 더 좋은 일이다.

요컨대, 부단(不斷)의 즐거움은

맨 처음 '경이감(驚異感)'에서 발원(發源)되어 진리의 바다에 흘러가는 것이다.

주지(周知)하는 대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보았을 때'에서

키츠는 이미 우리의 느끼는 바를 대변(代辯)하였다.

그 때 나는 마치 어떤 천체(天體)의 감시자(監視者)가

시계(視界) 안에 한 새 유성(遊星)의 허엄침을 본 듯,

또는 장대(壯大)한 코르테스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태평양(太平洋)을 응시(凝視)하고―

모든 그의 부하(部下)들은 미친 듯 놀라 피차에 바라보는 듯 말없이 다리에 의 한 봉우리를.

혹은 이미 정평(定評)있는 고전(古典)을 읽으라,

혹은 가장 새로운 세대(세대(世代)를 호흡(呼吸)한 신서(新書)를 더 읽으라,

각인(各人)에게는 각양(各樣)의 견해(見解)와 각자(各自)의 권설(勸說)이 있다. 전자는 가로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후자(後者)는 말한다.

"생동(生動)하는 세대(世代)를 호흡(呼吸)하라."

 

그러나 아무래도 한편으로만 기울어질 수 없는 일이요,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인(知識人)으로서 동서(東西)의 대표적인 고전은 필경(畢竟) 섭렵(涉獵)하여야 할 터이요,

문화인(文化人)으로서 초현대적(超現代的)인 교양(敎養)에 일보(一步)라도 낙오(落伍)될 수는 없다.

문제는 각자의 취미와 성격과 목적과 교양에 의한 비율(比率)뿐인데,

그것 역시 강요하거나 일률(一律)로 규정(規定)할 것은 못된다.

누구는 '고칠현삼제(古七現三制)'를 취하는 버릇이 있으나,

그것도 오히려 치우친 생각이요, 중용(中庸)이 좋다고나 할까?

 

다독(多讀)이냐 정독(精讀)이냐가 또한 물음의 대상(對象)이 된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는 전자의 주장이나,

'박이부정(博而不精)'이 그 통폐(通弊)요,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함'이 또한 그 약점(弱點)이다.

아무튼, 독서의 목적이 '모래를 헤쳐 금을 캐어 냄'에 있다면,

필경(畢竟) '다(多)'와 '정(精)'을 겸(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 역시 평범(平凡)하나마 '박이정(博而精)' 석 자를 표어(標語)로 삼아야 하겠다.

'박(博)'과 '정(精)'은 차라리 변증법적(辨證法的)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아니,

우리는 양자(兩者)의 개념(槪念)을 궁극적(窮極的)으로 초극(超克)하여야 할 것이다.

송인(宋人)의 다음 시구는 면학(勉學)에 대해서도 그대로 알맞은 경계(境界)이다.

 

벌판 다한 곳이 청산인데, (平蕪盡處是靑山) 평무진처시청산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네. (行人更在靑山外) 행인갱재청산외

 

나는 이 글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종시(終始) 역설(力說)하여 왔거니와,

그 즐거움의 흐름은 왕양(汪洋)한 심충(深衷)의 바다에 도달(到達)하기 전에,

우선 기구(崎嶇), 간난(艱難), 칠전팔도(七顚八倒)의 괴로움의 협곡(峽谷)을

수없이 경과(經過)함을 요함이 무론(毋論)이다.

깊디 깊은 진리의 탐구(探究)나 구도적(求道的)인 독서는 말할 것도 없겠으나,

심상(尋常)한 학습(學習)에서도 서늘한 즐거움은 항시 '애씀의 땀'을 씻은 뒤에 배가(倍加)된다.

비근(卑近)한 일례(一例)로, 요새는 그래도 스승도 많고

서적(書籍)도 흔하여 면학의 초보적(初步的)인 애로(隘路)는 적으니,

학생 제군(學生諸君)은 나의 소년 시절(少年時節)보다는 덜 애쓴다고 본다.

나는 어렸을 때에 그야말로 한적(漢籍) 수백 권을 모조리 남에게 빌어다기 철야(徹夜),

종일(終日) 베껴서 읽었고, 한문(漢文)은 워낙 무사독학(無師獨學), 수학(數學)조차도 혼자 애써서 깨쳤다.

그 괴로움이 얼마나 하였을까마는, 독서 연진(硏眞)의 취미와 즐거움은

그 속에서 터득, 양성되었음을 솔직(率直)이 고백한다.

끝으로 소화 일편(笑話一片)―내가 12, 3세 때이니, 거금(距今) 50년 전의 일이다.

영어(英語)를 독학(獨學)하는데, 그 즐거움이야말로 한문만 일과(日課)로 삼던 나에게는

칼라일의 이른바 '새로운 하늘과 땅(new heaven and earth)'이었다.

그런데 그 독학서(獨學書) 문법 설명의 '삼인칭 단수(三人稱單數)'란 말의 뜻을 나는 몰라,

'독서 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고언(古諺)만 믿고 밤낮 며칠을

그 항목(項目)만 자꾸 염독(念讀)하였으나, 종시 '의자현(義自見)'이 안 되어,

마침내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눈길 30리를 걸어

읍내(邑內)에 들어가 보통 학교(普通學校) 교장을 찾아 물어 보았으나,

그분 역시 모르겠노라 한다.

다행히 젊은 신임 교원(新任敎員)에게 그 말뜻을 설명(說明) 받아 알았을 때의 그 기쁨이란!

나는 그 날, 왕복(往復) 60리의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와,

하도 기뻐서 저녁도 안 먹고 밤새도록 책상에 마주 앉아,

적어 가지고 온 그 말뜻의 메모를 독서하였다. 가로되,

 

"내가 일인칭(一人稱), 너는 이인칭(二人稱),

나와 너 외엔 우수마발(牛 馬勃)이 다 삼인칭야(三人稱也)라."

 

 

 

낱말

 

면학 (勉學) :학문에 힘씀.

전배 (前輩).선배(先輩) 자신의 출신 학교를 먼저 입학한 사람. 연장자

1) 맹자의 인생삼락(人生三樂)

첫째, 부모와 형제가 함께 살아 있는 것, 둘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것,

셋째,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

언급 (言及) 어떤 문제에 대하여 말함. 면학 (勉學)학문에 힘씀.

진부 (陳腐)진부하다(사상, 표현, 행동 따위가 낡아서 새롭지 못하다.

인문(引文)인용문(남의 말이나 글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따온 문장).

주지 (周知) 여러 사람이 두루 앎. 일화(逸話)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아니한 흥미 있는 이야기.

단적 (端的) 곧바르고 명백한. 또는 그런 것. 피력(披瀝)하다 : 평소에 숨겨 둔 생각을 모두 털어 말함.

운운(云云)글이나 말을 인용하거나 생략할 때에, 이러이러하다고 말함의 뜻으로 쓰는 말.

모두(冒頭) : 글의 머리말 또는 첫 부분.

정자 (程子)<인명>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정호(程顥)와 정이(程頥) 형제를 높여 이르는 말.

현학적(衒學的) : 학문과 지식을 자랑하는 모양.

주석 (註釋)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 또는 그런 글.

완화 (緩和)긴장된 상태나 급박한 것을 느슨하게 함.

허두(虛頭) : 글이나 말의 첫머리. 와중(渦中) : 소용돌이 속.

명리 (名利) 명예와 이익을 아울러 이르는 말. 허화 (虛華)실속은 없고 겉으로만 화려함

초탈(超脫) : 초월하여 뛰어 넘음.구도 (求道)진리나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구함.

침잠 (沈潛)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물속 깊숙이 가라앉거나 숨음.

부생백년(浮生百年) : 덧없이 떠돌다 가는 일평생. 난후(亂後) : 한국전쟁 이후.

수복 (收復) 잃었던 땅이나 권리 따위를 되찾음.

구차 (苟且)살림이 몹시 가난함. .말이나 행동이 떳떳하거나 버젓하지 못함.

삼척안두(三尺案頭) : 작은 책상 머리. 검소하게 공부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함.

일수(一穗) : 한 가닥. 한 이삭. 여기서는 흐린 빛을 말함.

청등 (靑燈) 푸른빛을 내는 등. 문생 (門生)문하생(문하에서 배우는 제자). 고려 시대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고시관(考試官)에 상대하여 자기를 이르던 말.

 제자 (題字)서적의 머리나 족자, 비석 따위에 쓴 글자. 서증(書贈) : 글을 써 줌.

지설(持說) : 늘 간직하고 있는 의견. 지론(持論).

실리실득 (實利實得) 실제의 이득. 양성(養成) 가르쳐서 유능한 사람을 길러 냄.

민감 (敏感)자극에 빠르게 반응을 보이거나 쉽게 영향을 받음. 또는 그런 상태.

숙인(宿因) : 오래 된 인간. 족속 (族屬)같은 문중이나 계통에 속하는 겨레붙이.

같은 패거리에 속하는 사람들을 낮잡아 이르는 말.

영역 (領域).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범위.

영토, 영해, 영공으로 구성된다. .활동, 기능, 효과, 관심 따위가 미치는 일정한 범위.

영감 (靈感) 신령스러운 예감이나 느낌.경건 (敬虔)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

자아自我<철학>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ㆍ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ㆍ반응ㆍ체험ㆍ사고ㆍ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부단(不斷) 꾸준하게 잇대어 끊임이 없다.

유성 遊星<천문>행성(行星)(중심별의 강한 인력의 영향으로 타원 궤도를 그리며 중심 별의 주위를 도는 천체).

장대 (壯大) 허우대가 크고 튼튼하다. .기상이 씩씩하고 크다.

응시 (凝視)눈길을 모아 한 곳을 똑바로 바라봄.

정평 (定評)모든 사람이 다 같이 인정하는 평판. 권설 (勸說) 타일러서 권함. 또는 그런 말.

다생(多生)의 숙인으로 다복한 사람 : 종교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 옛것을 완전히 익힘으로써 새것을 안다. 필경 (畢竟) 결국 끝장에 가서는.

섭렵(涉獵) : 여러 가지 책을 널리 읽음. 낙오 (落伍)대오에서 처져 뒤떨어짐.

고칠현삼제(古七現三制) : 옛 책을 7할, 새 책을 3할 읽는 것. 정독 (精讀)뜻을 새겨 가며 자세히 읽음.

남아수독오거서(男兒 讀五車書) :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의 책을 읽어야 한다.

박이부정(博而不精) : 널리 알지만 자세하지는 못함.

통폐 (通弊) 일반에 두루 있는 폐단. 안광이 지배를 철함 : 눈빛이 종이를 뚫을 정도로 정독함.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함 : 작은 것(세부 사항)은 보되 큰 것(학문의 큰 흐름)은 보지 못함.

박이정(博而精) : 널리 알고 깊이 익힘.

변증법 (辨證法)<철학>문답에 의해 진리에 도달하는 방법. 어원은 대화의 기술이라는 뜻이다.

초극(超克) : 이겨 냄. 종시 (終始) 마지막과 처음. 또는 마침과 시작함.

역설 (力說) 자기의 뜻을 힘주어 말함. 또는 그런 말.

왕양(汪洋) : 넓고 큰 물결. 심충(深衷)의 : 깊고 깊은.

기구(崎嶇) : 험난한 고갯길. 인생의 어려움을 말함. 간난 (艱難) .몹시 힘들고 고생스러움.

칠전팔도 (七顚八倒)[칠쩐팔또] 일곱 번 구르고 여덟 번 거꾸러진다는 뜻으로,

수없이 실패를 거듭하거나 매우 심하게 고생함을 이르는 말.

무론 (無論/毋論)[같은 말] 물론(勿論)(말할 것도 없음).탐구 (探究)진리, 학문 따위를 파고들어 깊이 연구함.

구도 (求道).진리나 종교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구함.

심상(尋常) : 평범한. 예사로운. 비근(卑近)한 : 거의 같은.

애로 (隘路).좁고 험한 길. .어떤 일을 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

한적 (漢籍)한문으로 쓴 책. 철야 (徹夜) 밤샘(잠을 자지 않고 밤을 보냄).

종일 (終日) 온종일(아침부터 저녁까지의 동안).

무사독학(無師獨學) :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함. 연진 (硏眞)진리를 연구함.거금(距今) : 지금으로부터.

독서백편의자현 : 글을 여러 번 읽다 보면 그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

고언(古諺) : 옛날 속담. 염독(念讀) : 생각하며 외듯 읽음.

우수마발(牛溲馬勃)) : 쇠오줌과 말똥. 가치 없는 모든 것.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월(보름달) / 김동리  (0) 2015.03.19
설/ 전숙희  (0) 2015.02.20
폭포와 분수 / 이어령  (0) 2014.12.17
수필 / 피천득  (0) 2014.11.21
가을나무 / 박두진  (0) 2014.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