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그리운 강

시인묵객 2013. 1. 11. 19:30

 

 

 

 

그리운 강               

                       

 

사람들은 늘 바다로 떠날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일이 되어 가까운 마을부터 휩쓸어버리거나

이 세상을 차갑고 거대한 물로 덮어버린 뒤

물보라를 날리며 배 한 척을 저어 가는 날이

한 번쯤 있었으면 하지만


너무 크고 넓어서 많은 것을 가졌어도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것처럼 공허한

바다가 아니라 쏘가리 치리 동자개 몇 마리만으로도

넉넉할 수 있는 강으로 가고 싶다


급하게 달려가는 사나운 물살이 아니라

여유 있게 흐르면서도 온 들을 다 적시며 가는 물줄기와

물살에 유연하게 다듬어졌어도 속으론 참 단단한

자갈밭을 지나 천천히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욕심을 버려서 편안한 물빛을 따라 흐르고 싶다


너무 많은 갈매기 가마우지 떼가 한꺼번에 내려앉고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바다가 아니라

내게 와 쉬고 싶은 몇 마리 새들과도

얼마든지 외롭지 않을 강으로 가고 싶다


은백색 물고기 떼를 거느려 남지나 해에서

동해까지 거슬러오르는 힘찬 유영이 아름다운 것도 알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적한 강 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맑고 때묻지 않은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강 마을에도 어린 시절부터 내게 길이 되어주던

별이 머리 위에 뜨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호젓한 바람 불어오리니 아무래도

나는 다시 강으로 가야겠다

 


존 메이스필드의 「그리운 바다」의 운을 빌려

 

 

 

- 좋은 글 -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무  (0) 2013.01.14
그리움  (0) 2013.01.13
아름다운 당신  (0) 2013.01.10
그 저녁 바다  (0) 2013.01.09
설야  (0) 201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