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군무

시인묵객 2013. 1. 14. 19:30

 

 

 

 

 

군 무 /   도 종 환


우포늪에서 무리지어 내려앉는 새떼를 본 적이 있다
분홍빛 발갈퀴를 앞으로 뻗으며 물 위에 내리는
그들의 경쾌한 착지를 물방울들이 박수를 튀기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을 물든 하늘 한쪽에 점묘를 찍으며 고니떼가
함께 날아오르자 늪 위를 지나가던 바람과
낮은 하늘도 따라 올라가 몇 개의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기쁜 숨을 내쉬었다

 

먹고 사는 일이 멀리서 보는 것과 달라서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눈은 맹금류처럼 핏발 서 있지 않았다

 

솔개나 올빼미가 뜰 때는 주변의 공기도 팽팽하게
긴장을 하고 하늘도 일순 흐름을 멈추며
피 묻은 부리와 살 깊숙이 파고들어간
날카로운 발톱을 주시하는데
물가의 새들은 맹금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만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고 어떻게 함께 날개를 움직여야
대륙과 큰 바다 너머 새로운 물가를 찾아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매같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조류들도 있지만 모든 새가 그들의 독무를
따라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넛이 팔을 끼고 손에 지갑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거나
일곱 씩 열씩 모여 떠들며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몰려가는
점심시간의 마포나 강 건너 여의도 또는 구로동 골목에서
물새들을 본다

 

간혹 물가 빈터에 세운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보며 함께 소리 지르고
함께 날개를 세우는 군무를 볼 때도 있고
몇 해에 한 번은 어두운 하늘에 촛불을 밝히고
몇 십만 마리씩 무리지어 나는

새떼들의 흐르는 춤을 볼 때도 있다

 

새들이 추는 춤은
군무가 제일 아름답다
독수리가 되어야만 살아남는 건 아니다
가창오리나 쇠기러기들도 아름답게 살아간다
그들도 자연의 적자가 되어 얼마든지 씩씩하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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