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 박 숙 이
가끔 한 번씩, 답답하면
한 번씩 쳐다보는 저 달도
자꾸 보면 정이 들까,
바람 말고, 어둠 말고,
가랑잎소리 말고, 추위 말고,
상처 말고, 기억 말고,
외상값 말고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집에 가끔씩 드나드는
아니,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저 남자,
오늘밤엔 달아오른 감나무 밑으로
날 슬쩍 불러낸다
아! 크다,
벌겋게 달아올랐다,
흥건한 저 남자,
시간 되면 뒤도 안 돌아보는
태연한 저 남자,
하룻밤에 국경선 몇 번 넘는
거뜬한 저 힘! 힘!
그래, 모든 밤의 우상이다
시집<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