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시인묵객 2013. 12. 19. 19:30

 

 

 

 

 

달 / 박 숙 이

 

 

 

가끔 한 번씩, 답답하면

한 번씩 쳐다보는 저 달도

자꾸 보면 정이 들까,

 

바람 말고, 어둠 말고,

가랑잎소리 말고, 추위 말고,

상처 말고, 기억 말고,

 

외상값 말고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빈집에 가끔씩 드나드는

아니,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저 남자,

 

오늘밤엔 달아오른 감나무 밑으로

날 슬쩍 불러낸다

 

아! 크다,

벌겋게 달아올랐다,

 

흥건한 저 남자,

시간 되면 뒤도 안 돌아보는

태연한 저 남자,

 

하룻밤에 국경선 몇 번 넘는

거뜬한 저 힘! 힘!

그래, 모든 밤의 우상이다

 

시집<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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