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밭에서 / 박라연
수수밭에 서면
내 어릴 적 꽃고무신이 보이고
안경알 같은 하늘이 보인다
하늘 속으로 자맥질하는
잊을 수 없는 얼굴들
막막한 눈시울 속으로 내리는
조금씩 삭고 있는
발 시린 낮달이 보인다
잠잠이 타오르는 눈동자
오늘도 잠들지 못한 그 바람의 옷자락에
슬프고 긴 머리카락을 묻고
이 세상 끝까지 흔들릴 수 있는 자유는 없을까
가난이든 사랑이든
살을 섞으며 아득히 함께 흐르는
저 먼 노을처럼
바람 부는 날이면 이따금
불면의 수수밭으로 나가
한 세상 흔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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