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수수밭에서

시인묵객 2012. 11. 23. 19:30

 

 

 

 

수수밭에서 / 박라연

 

 

수수밭에 서면

내 어릴 적 꽃고무신이 보이고

안경알 같은 하늘이 보인다

 

하늘 속으로 자맥질하는

잊을 수 없는 얼굴들

막막한 눈시울 속으로 내리는

조금씩 삭고 있는

발 시린 낮달이 보인다

 

잠잠이 타오르는 눈동자

오늘도 잠들지 못한 그 바람의 옷자락에

슬프고 긴 머리카락을 묻고

이 세상 끝까지 흔들릴 수 있는 자유는 없을까

 

가난이든 사랑이든

살을 섞으며 아득히 함께 흐르는

저 먼 노을처럼

바람 부는 날이면 이따금

불면의 수수밭으로 나가

한 세상 흔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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