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추석 달을 보며

시인묵객 2012. 9. 30. 19:30

 

 

 

 

 

 

 

추석 달을 보며 / 문 정 희

 

 

 

그대 안에는

아무래도 옛날 우리 어머니가

장독대에 떠놓았던 정한수 속의

그 맑은 신이 살고 있나 보다.

 

지난여름 모진 홍수와

지난봄의 온갖 가시덤불 속에서도

솔 향내 푸르게 배인 송편으로

떠올랐구나.

 

사발마다 가득히 채운 향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빌던 말씀

참으로 옥양목같이 희고 맑은

우리들의 살결로 살아났구나.

 

모든 산맥이 조용히 힘줄을 세우는

오늘은 한가윗날.

헤어져 그리운 얼굴들 곁으로

가을처럼 곱게 다가서고 싶다.

 

가혹한 짐승의 소리로

녹슨 양철처럼 구겨버린

북쪽의 달 남쪽의 달

 

이제는 제발

크고 둥근 하나로 띄워놓고

나의 추석 달은

백동전같이 눈부신 이마를 번쩍이며

밤 깊도록 그리운 얘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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