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통증

시인묵객 2012. 5. 23. 19:30

 

 

 

 

 

 

 

 

통 증 / 고 영 민

 

 

중국에는 편지를 천천히 전해주는 느림보 우체국이 있다지요

보내는 사람이 편지 도착 날짜를 정할 수 있다지요

한 달 혹은 일 년, 아니면 몇십 년 뒤일 수도 있다지요

 

당신에게 편지 한 통 보냅니다

도착 날짜는 그저 먼 훗날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길 원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이 천천히 전해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보길 원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십 번,

수백 번의 후회가 나에게 왔다 가고

어느 날 당신은 내가 쓴 편지 한 통을 받겠지요

겉봉을 뜯고 접은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겠지요

 

그때 나는 지워진 어깨 너머 당신 뒤에

노을처럼 서서 함께 편지를 읽겠습니다

 

편지가 걸어간 그 느린 걸음으로 내내 당신에게 걸어가

당신이 편지를 읽어내려 가며

한 홉 한 홉 차올랐던 숨을 몰아 내 쉬며 손을 내려놓을 즈음

편지 대신 그 앞에 내가 서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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