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시인묵객 2011. 12. 2. 19:29

 

 

 

 

 

 

 

 

 

 

 

첫눈 오는 날 만나자 / 정 호 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꽃  (0) 2011.12.04
그리운 악마  (0) 2011.12.03
12월의 시  (0) 2011.12.01
11월을 보내며  (0) 2011.11.30
당신의 냄새  (0) 201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