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바람의 목회

시인묵객 2011. 11. 9. 21:11

 

 

 

 

 

바람의 목회 / 천 서 봉

 

 

붉은 창문들 저무네.

거리엔 부옇게 물길이 번지고 벗겨진

대지의 표면이 비늘처럼 흘러가네.

햇살의 따가운 못질 뒤에도 나무들은

자꾸만 제 잎 쥐고 휘청거리네.

 

버려진 오르간처럼 켜켜이 쌓인

공사장 파이프들이 저녁을 연주하네.

노을 따위를 발음하면

삶은 늘 뿌리부터 뒤척인다고,

저기 어깨 둥글게 웅크려 철 야기도를 준비하는 가로수.

 

공중을 만지는 평화로운 연기를 보네.

바람은 오후 6시를 읽는 기술, 혹은

복음. 흔들려야지. 흔들려야지.

 깃대처럼 골목에 나를 꽂아두네.

떨어져 빈 나뭇잎 자리까지,

다만 모든 것이 바람의 영역이네.

 

늦은 상점의 문이 스르륵 밀렸다가 절로 닫히네.

누구일까. 누구일까.

어둠 의 긴 목이 자꾸 기울고

사람들은 정물처럼 늙어가네.

모두가 바람의 존재를 믿었지만

아무도 그의 뼈마디를 보지 못하네.

푸르르,

저마다의 십자로를 건너는 시간,

허파꽈리처럼 웅크려 핀 생의 바람꽃들,

 

지천이네. 자라, 자라,

잠들지 않는 한밤의 환한 집회를 보네.

 

 

* 2005년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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