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주름

시인묵객 2011. 1. 26. 13:09


 

 

 

 

 

 

 

 

주 름 / 박 규 리

 

 

 

 

 

제 얼굴을 제가 만든다는 말 무엇인가 했는데

지울 수 없는 사연 건너뛰지 못한 세월

골골이 주름으로 잡혀 내 얼굴이 되었다

웃음 하나에 주름 하나 서러움 하나에 주름 하나

이렇듯 살가운 사정과 스산한 과거 내게도 있었는가

누군가에게 몸 버리고 떠돌던 흔적과

양미간 깊이 밴 상처

 

그러나 생각하면,

내 주름은 또다른 누구의 주름이 아니었으리

나 때문에 눈물 흘리던 사람이여

나 때문에 섧게 섧게 속 태우던 사람이여

내 철없는 욕심과 부질없는 사랑이

상처 한줄 그을 줄 차마 어찌 알았으랴

 

언제부터였을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란

주름과 주름이 섞이는 일이라는 걸 짐작한 뒤부터

내가 먼저 한줄 주름으로 눕게 될까봐

그대에게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깊은 주름으로

쓸쓸히 접히게 될까봐

짐짓 딴전이나 피우다

먼데로 말꼬리 흘린 적 참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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