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우체국 앞에서 / 조 은 경
가을 우체국 앞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바람이 불더군요.
그 바람에 묻어 온
낙엽 한 이파리
하늘의 장식이 되어 날아오르고
그 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던 지요.
그것은 아마
내가 부치려 한 마음이
미리 그대에게 달려가고 있었나 봐요.
기억하나요?
해바라기 꽃잎이 뚝뚝 떨어져 내리던 날
그 짙어만 가던 노란 눈물이 슬퍼
괜스레 신호등 앞을 서성대었지만
실은 내 허전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가을 우체국 앞에서
나는 그대를 기다렸습니다.
물론 그것을 알길 없는 그대는
끝내 오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도 슬프지 않았습니다.
푸르게 날아오르는 하늘과
국화향기 그윽한 뜰이 있었고
따갑지 않은 햇살과
얼굴 붉힌 나뭇잎이 미소지으며
커피 한잔 함께 나누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세월은 가고
이마에 가늘게 골지는 주름과
윤기 잃은 살갗만큼 나를 여위게 하는 나이에
가끔은 텅 비어버린 쓸쓸함으로 가슴 아파 오지만
어쩌면
가을 우체국 앞에서
나는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넓은 자연 속에
제 색깔을 드러내지 않아도 좋은
하나의 조각이 되어 어우러질 수 있는
그렇게 익어버린 나를 말입니다.
낙엽이 지면 적당히 검어진 부토처럼
비가 내리면 작은 개울물처럼
눈 내리면 그 눈을 맞는 앙상한 나무처럼
내 주변을 수용하고 인정하며
스스로를 영글게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도 나는 내 모든 기대를
꽃무늬 편지지에 적어 부칩니다.
그리고 기다리겠습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런 나와
그런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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