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김선화(수필가)
가을엔 자연이 보내오는 편지를 받는다.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낙엽을 통해 덜어내는 마음의 여유를 배운다.
그래서 쓸쓸한 것 같지만 되레 채워지는 계절이다.
서른둘에 먼 길 떠난 남동생을 그리워하던 서른여섯의 나는,
덩그마니 자리 잡은 숲속의 너럭바위에 몸을 뉘인 일이 있다.
이미 산화되어 자연의 일부가 된 동생의 실체를 바람을 통해 느끼며,
돌고 도는 우주의 섭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때 바위를 감싸고 있던 숲에서 ‘우수수’ 낙엽 흩날리는 소리가 났다.
내 얼굴 위에도 낙엽이 내려앉았다.
그것들 사이로 ‘그리움도 넘치면 해가 되는 법’이라는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 즈음, 각기 다른 길에 선 사람을 사모하는 여인의 얘기를 들었다.
대상은 특정 종교에 귀의해 심신을 청신하게 닦아가는 사람이란다.
그런데 그녀는 그를 향해 마음을 앓다가
상대방이 보내온 작은 나뭇잎 한 장에 오열을 터트렸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길 들으면서 사람의 순정에 가슴이 저려왔다
그러한 울림이 아무 때나, 또 아무에게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여인의 고백은, 한동안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녀는 얼마나 오랫동안 상대방의 마음에 귀 기울여 왔을까.
그 기다림에 대한 답장으로 보내온 나뭇잎 한 장은 무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그건 어쩌면, 그리움을 말려버린 심장의 상징물이었는지도 모른다.
20년쯤 전 붉게 단풍져 내리는 가을 산을 보면서 내 가슴이 온통 물들고 있었다.
그걸 알아챈 한 사람이 함께 걷던 길에서 낙엽 한 장을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잘 봐요. 이 나뭇잎이 곧 그리로 갈 거예요”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나뭇잎은 며칠 뒤 한 일간지의 지면을 장식하는 글이 되어 돌아왔다.
지면엔 깨알 같은 글자뿐이었으나,
내게 각인된 나뭇잎은 배경 그림으로 오버랩 되어 수많은 언어를 잣고 있었다.
잎맥에 아로새겨진 고운 결들이 숱한 사연을 낳으며,
삶의 길목에서 주춤거리는 사람들에게 길 안내를 하는 듯했다.
미세한 결 하나하나가 모두 길로 보였다.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 혈연으로, 지연으로, 또 부부로….
그중에도 특정한 느낌의 사람과 동행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러한 생각 속에 받아든 그해 가을의 참나무 잎새 한 장은 해가 갈수록 선명해진다.
붉은 빛깔보다 강렬한 가을편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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