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햇 볕살 따실 때에 / 박두진

시인묵객 2015. 6. 21. 06:00

 

 

 

 

햇 볕살 따실 때에 / 박두진

 

 

나무 푸른 아래로 오너라. 날이 개어 날이 참 좋다.

푸른 지금은 음력으로 오월달. 있는 것 다 싱싱히 푸르르는,

여기는 푸른 산 볕바른 아침나절.

억새, 잔디, 새광이풀 우거지고, 삽초, 취, 수영, 수리취, 더덕, 도라지가 어울린데,

올에도 다시 피는, 별같이 곱게 피는, 나리꽃 석죽꽃들…….

 

푸른 잎 이들 대는 입이 넓은 떡갈나무,

오월에도 치워 떠는 파들대는 사시나무, 키가 큰 물푸레와,

풍, 솔, 밤나무 옷나무와, 머루, 다래, 으름, 칡, 댕댕이 넝쿨들이,

푸른 돌바위 위로 얼크러져 오르는데,

삐이 호이, 비이 호이, 홀로 우는 새의 소리…….

머언 산에서는, 뻑구욱, 뻑구욱, 울며 오는 뻐꾹소리…….

또, 물 소리……. 돌을 씻고 돌 틈으로,

돌돌돌 쪼로로록 흘러오는 물의 소리…….

 

퍼붓듯 나뭇잎을 햇볕이 쬐어 주고,

쬐이는 햇볕살을 잎새들이 빨아 예고,

가지를 잡으면- 너같은 손목만한 나뭇가질 잡으면,

수루루룩 느껴질 듯 스며오는 물줄소리.

땅에서 빨아대는 나무 속물줄 소리…….

산에 사는 나무는, 햇볕 먹고, 물 먹고,

오뉴월 한나절을 싱싱히도 자라누…….

 

오라. 너는 산으로. 나무 품으로…….

푸른 산 산도 좋고 물도 좋기로, 푸른 잎 붉은 꽃,

우는 새가 좋기로, 내사 어딜 가나 그리웁긴 너의 모습,

내 가슴 깊은 속에, 그리웁긴 너의 모습.

너 아님 어찌 내가 청산인들 찾으랴.

 

갈수록 좋은 날에 띠끌 덮여 흩날리고,

들려오는 아우성에 귀가 솔아도,

나는 불르리라 어지러운 소리 속에,

닳은 목뻐꾹처럼 너를 다만 불르리라.

푸르른 나무란들, 붙게 고흔 꽃이란들,

가을 되면 훌훌 다 낙엽 되어 져버릴 것,

싸늘한 가을 바람 휘휘로히 불어와도,

눈포래 매운 바람 빈 가질 울리어도,

나는 불르리라 너를 다만 왼종일.

내 살아 숨 쉴 동안 난 너를 불르리라.

 

오라. 여기, 너는, 나뭇잎 푸를 때에…….

오라. 다만 피는 꽃 고을 때에…….

산 넘어, 산을 넘어, 뻐꾹새 목이 잦듯 너도 나를 불르며,

햇볕살 따실 때에 나를 와서 안어라.

 

<해·1949>

『박두진시선집 예레미야의 노래』

 

파들대다:

[동사] [같은 말] 파들거리다(자꾸 몸이 작게 바르르 떨리다).

휘휘 : 강한 바람이 자꾸 거칠게 스쳐지나갈 때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

눈포래:

[명사] [방언] ‘눈보라(바람에 불리어 휘몰아쳐 날리는 눈)’의 방언(평안, 함경).

솔다 : 같은 말이나 싫은 소리를 자꾸 들어서 아프다.

예문) 깍깍 우짖는 까마귀 소리에 귀가 소는 듯했다.

부모님한테 공부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 귀가 솔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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