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겨울나기

시인묵객 2012. 12. 3. 19:30

 

 

 

 

 

겨울나기  / 도 종 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려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 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있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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