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요한 우물 / 이 성 선
허공에 꽃으로 안기거나
바람으로 울며 다니거나
내 돌아가 마지막 들여다볼 곳은
고요한 우물뿐입니다.
이승을 구름으로 흐르고
삼십삼천 하늘을 학으로 날아도
돌아가 마지막 들여다볼 곳은
고요한 우물뿐입니다.
불꽃같이 타오르는 나의 일생
누더기 벗으며 닦고 닦아서
해로 뜨고 달로 뜨고
부서져 몸은 다시 별로 피어나도
변하여 걸어가는 내 모습 하나하나
남김없이 비추어주는 곳
나고 죽고 살아가는 온갖 길이
거울보다 더욱 잘 비치는 나라
누가 나를 몰고
내가 또 나를 몰고 가는 닿는 땅
그 죽음에 이르러 들여다볼 곳도 오직
이 고요한 우물뿐입니다.
죽는 순간의 내 눈빛이 담겨지는 곳
죽는 순간의 내 미소가 비치는 곳
(시인, 1941-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