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유년 시절

시인묵객 2011. 5. 18. 12:36

 

 

 

 

 

 

 

 

 

 

유년시절(幼年時節) / 하재봉

 

 

1. 江 마 을

 

 

외사촌兄의 새총을 훔쳐 들고 젖어있는 새벽江의 머리맡을 돌아

갈대숲에 몸을 숨길 때, 떼 서리로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날개 끝에서

물보라처럼 피어나는 그대 무지개를 보았나요?

 

일곱 개 빛의 미끄럼틀을 타고 새알 주으러 쏘다니던 江岸에서

무수히 많은 눈물끼리 모여 흐르는 江물 위로 한 웅큼씩 어둠을 뜯어

내버리면, 저물녘에는 이윽고 빈 몸으로 남아 다시 갈대 숲으로 쓰러지고요

 

둥지를 나와 흔들리는 바람을 타고 江의 河口까지 내려갔다가

그날 노을 거느리며 돌아오던 새떼들의 날개는 불타고 있었던가?

 

어느덧 온 江마을이 불타오르고 그 속을 나는 미친 듯이 새 알을 찾아 뛰어다녔지요

맨발로 오래된 바람의 건반을 밟으며 아이들의 긴 그림자가 사라진다

 

노을 속으로, 목 쉰 풍금소리 꽃잎처럼 지는 들녘에 어둠은 웬 소년 하나를 세워두고

지나간다. 간다. 노을밭 지나며 훔친 불씨 속살 속에 감춘 아이들

 

한 짐 어둠을 메도 달집 가까이 떠나고, 알몸의 또 한 무리는

노을의 뿌리 밑 그 잠으로 엉킨 언덕으로 내려간다.

 

풀어놓는 짐으로 깊은 어둠의 집을 만든다,

달무리가 지고 지붕 밑에 불시 붙여

온 누리 가득 차게 달빛 일으키는 정월 대보름의 아이들

 

빈 몸으로 어둠속에 숨어있던 소년은.

새벽녘 마른 가슴 부비어 불을 지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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