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버들개

시인묵객 2009. 2. 25. 09:58


 

 

 

 

 

 

 

버들개(柳浦)   /  유년의 그리움. 1  /   권혜진
 

 


내가 나서 자란 곳은 '버들개'라오
유난히도 버드나무 많은 앞개울은
학교 파한 아이들의 놀이터였네

개헤엄도 좋았고 송장 헤엄도 좋았고
입술이 파리하고 아래턱이 덜덜 떨려도 좋았고
언니가 입던 빨간 엑스란 빤쓰(폴리에스텔 펜티)에
두어 군데 구멍이 있어도 좋았네


송사리 무덕무덕 떼 지어 줄달음치고
다슬기 돌 틈바귀에 다 세마다
꿈틀꿈틀 장판을 벌렸는데
모래 속에 묻혀 사는 조개아줌마
시커먼 거머리 한 입 물고 살았었네


물이 세게 흐른다고,
물래치기
모래가 쌓여 있어,
모래장바
깊이를 알수 없는 피나무소,
비게바우(베게바위)........


내가 나서 자란 곳은 '버들개' 라오
누렁이 등에 보섭 달고 논 밭 갈아
아버지는 새벽부터 청밀을 갈았지

터밭  흐드러진 도라지꽃 피고 지고
낮은 능선 따라 산딸기 붉게 물오를 무렵
뽕나무 가지마다 열린 검은 오디는
송방에 진열된 뽀빠이 보다도 맛 있었다네.

 

진종일 뻐꾸기 노래 들으며
찔레랑 시금도 꺽고
10원짜리 개눈깔 사탕 하나면 초콜릿이 아니어도 좋았고
비스킷이 아니어도 그냥 좋았다네.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어릴적 그 시절


여름밤 모기향 피어오르면 앞마당에 멍석을 깔고
구수하게 쪄진 감자,
풋 강냉이 한 소쿨 내어놓고
삼대가 모여 앉아 이야기꽃 피웠지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고,
들에는 반딧불이 깜빡이고
별빛 받으며 반딧불이 쫓던 작은 계집아이는
여직도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운 듯 꿈을 꾼다네

 
등잔불 심지를 돋우며
숙향뎐 한 구절을 낭낭히 읽으시는 어머니를
방랑시인 김삿갓을 구성지게 부르시는 아버지를
할머니의 자장가 소리를
보라색, 하얀색 도라지꽃
발가벗고 멱감던 조무래기들......아니,
유난히도 버들이 많던 개울가에 물장구치던
눈이 크고 마른 개집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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