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꽃게 속의 바다
시인묵객
2008. 7. 24. 10:36
꽃게 속의 바다 / 최 지 인
산 등치 만한 가을을 내러 읍내에 간 엄니는
해거름 녘,
하늘같은 바다를 이고 돌아왔다
함지박이 먼저 쪼르르 마루 위에 내려서자
풀썩 쏟아진 바다가
마당 가득 출렁거렸다
파도를 헤치고 뽀글뽀글 입 다심을 하는
등이 빨간 게 옆 걸음으로
서너 칸 건너가고
포말로 흩어지는 세상의 소금기
마른 풀 섶 이고 지고 다리품을 팔았던
바람이 비로소 발목을 적시고
가을하루(치)의 살뜰한 고단함을 끓여
동그랗게 마주한 식구들의 입이
멀리서 온 바다 속을 헤맨다
입 속으로 길을 비워내는
동해의 통로를 따라
맨발로 따라나선 꿈속에선
텅 빈 꽃게의 등껍질처럼
까탈스럽지 않게
자신을 비워내는 법을
바다가 일러주었다
엄니처럼 엄. 니. 처. 럼.
이문이 남지 않은
무욕의 삶을 진정으로
웃음 짓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