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희망/ 김현승

시인묵객 2017. 8. 13. 08:00

 

 

 

 

 

희망 / 김현승

 

희망,

어두운 땅 속에 묻히면

황금이 되어

불같은 손을 기다리고,

 

너의 희망,

깜깜한 하늘에 갇히면

별이 되어

먼 언덕 위에서 빛난다

 

너의 희망,

아득한 바다에 뜨면

수평선의 기적이 되어

먼 나라를 저어 가고,

 

너의 희망,

나에게 가까이 오면

나의 사랑으로 맞아

뜨거운 입술이 된다.

 

빵 없는 땅에서도 배고프지 않은,

물 없는 바다에서도

목마르지 않은

우리의 희망!

 

온 세상에 불이 꺼져 캄캄할 때에도,

내가 찾는 얼굴들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생각하는 갈대 끝으로

희망에서 불을 붙여 온다.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때에도

우리의 무덤마저 빼앗을 때에도

우릴 빼앗을 수 없는 우리의 희망!

 

우리에게 한 번 주어 버린 것을

오오, 우리의 신(神)도 뉘우치고 있을

너와 나의 희망! 우리의 희망!

 

(·시인, 1913-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