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초여름 숲처럼 / 문정희

시인묵객 2016. 6. 12. 08:00

 

 

 

초여름 숲처럼 / 문정희

 

나무와 나무 사이에

푸른 하늘이 흐르고 있듯이

그대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신전의 두 기둥처럼 마주보고 서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쓸쓸히 회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오늘 저 초여름 숲처럼

그대를 향해 나는

푸른 숨결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서로를 쑤실 가시도 없이

너무 멀어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 길을 만드는 일도 없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푸른 하늘처럼

 

그대와 나 사이

저 초여름 숲처럼

푸른 강 하나 흐르게 하고

기대려 하지 말고, 추워하지 말고,

서로를 그윽이 바라볼 수밖에 없다.

 

(시인,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