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수직으로 크는 이유/ 남홍숙
나무가 수직으로 크는 이유 / 남홍숙
그가 한곳에만 서 있다고 해서, 한곳에만 ‘마음 빛’을 쏘진 않는다.
통시적으로 세상을 내려다보며 싱그럽게 서 있다.
위에서 유장하게 내려다보는 모습은 세상을 안는 품새다.
또, 위로 향한 자세에서 좀체 전복되지 않을 그의 욕망이 감지된다.
편협하지 않으면서, 도저하고 도도한 기운으로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오르고 있다.
“본다고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지만 써도
다함이 없는” 노자의 도를 그는 지니고 있다.
그에게서 하늘은 아득히 먼 곳이었다.
도달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거리였다.
땅을 헤치고 나온 작디작은 그에게 누구 하나 눈길을 준 적이 없었지만
햇살이나 바람을 업고 침묵으로 푸르게 자라났다.
그가 움직일 수 없어, 낡거나 닳아 버린 자리처럼
더러 지겹기도 했을 법한데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속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뻗으면서 더 빛나는 생기와 생동감을 발하였다.
한 뼘도 못 되는 자투리의 좁은 터에서 태어난 그는
점점 눈부시고 풍요한 영토로 가꾸어 갔다.
속내가 깊은 탓이리라.
그에게 햇살과 바람이 친절만 베푼 건 아니다.
햇살은 따갑게 내리쏘며 그를 애타게 말려 놓기도 했고
바람은 그를 후려쳐서 생채기도 남겼다.
그러나 햇살과 바람이 없으면 나무, 그는 생명을 잃고 만다.
바람과 햇살도 그가 없으면 살아가는 맛을 잃으리라.
햇살은 그에게 쉼없이 영양을 공급하고
바람은 그에게 여유와 청빈의 도를 날라 주며…,
영원한 벗으로 더불어 살아가야 그들 운명의 천은 짜여진다.
그가 어린나무일 때 받은 상처는 옹이로 박혀 있지만
그는 그리 속 좁은 물상이 아니어서,
넓고 깊은 관조로써 상처를 스스로 위무하고 삭이며 싱싱하게 자라난다.
밤은 깜깜해서 무섭고 비는 차가워서 싫고 눈은 금방 녹아 버려서
거부감이 느껴질 법도 하지만 그는 편애하지 않고 덤덤히 받아들인다.
그 앞에 서 있다 보면 나 자신의 마음이 가볍고 왜소하게만 느껴진다.
새는 음색이 고와 반기고 바람은 시원해서 내게 머물기를 바라며,
별은 꿈을 키워 준다고 호들갑스레 내 삶에 끌어와 편애하는 나의 모습이,
그 앞에서 간사하게 느껴진다.
나무는 묵언의 언어로 자라났다.
“고요하고 잠잠하며 멀고 아득한 사이”에 나무,
그의 주변으로 인간이 둘러싸이기 시작한다.
침묵의 언어로 서 있는 나무에 반하여 인간은 환성을 지르기도 하고
나무의 가지를 마구 부러뜨리는가 하면 나뭇가지에 매달려 열매를 따 내기도 한다.
오진으로 휘감긴 인간의 영혼을 나무에 의탁하여 말끔히 씻어 내리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나무는 “침묵이라는 거대 이미지”로 서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듯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침묵이 있다.
그럴 때 나무는 성자가 된다.
하늘의 넓은 품이라야 나무를 안을 수 있다.
나무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하늘이 떤다.
어느덧 키가 자라 하늘에 닿은 나무의 초록 잎을 감동으로 껴안은
하늘이 바이브레이션 하듯 무성의 현을 켠다.
우람한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는 2층 발코니에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조우하는 모자간의 상봉을 보는 듯하다.
나뭇가지가 떠는 것 같지만 떨리는 가지를 하늘이 떨며 반기는 것이다.
높은 창공에서, 초록의 싱싱한 나무를 떨며 맞아들이는 하늘을 보니
내 마음도 한기가 서린 듯 떨려 온다.
하늘과 나무, 그리고 내가 삼위일체가 되었는가.
키가 자라 마침내 하늘의 품에 안긴 나무는 초록빛 기구처럼 넘실대며 한바탕 춤을 춘다.
나도 슬며시 나무와 하늘 사이에서, 그들의 춤사위에 끼어든다.
땅속에 뿌리를 발처럼 디디고 하늘까지 닿아 땅과 하늘을 잇는 끈이 되는 나무,
그의 물리적인 자궁이 땅이라면 애초 그 영혼의 근원은 하늘이었을 거다.
대척점에 있던 기쁨이나 미움이 심연 깊숙이에서 맞닿게 되는 꼭짓점이 있듯이,
땅과 하늘도 어쩌면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점이 있는지도.
그 점이 나무인지도. 하늘과 땅 사이에 자라나는 나무가 있어
노자의 도가 생겨나게 되었는지도.
인간의 위치에서 나무를 보면 성자 같지만 하늘에서 나무를 내려다보면
나무는 아직 못다 자란 어린아이로 보이리라.
나는 안지도 품지도 못하고 밑에서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나무지만,
하늘은 나무를 어머니처럼 품어 안는다.
이 푸르고 드넓은 하늘에서 모성애가 느껴진다.
새들이 높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날아와 그네 타듯 매달리자
하늘의 가슴은 콩콩 뛰기도 하고 더 큰 새가 날아들자 쿵 내려앉는다.
하늘은 새와 나무가 높은 가지에서 매달려 노는 모습이
귀엽다기보다는 위험 수위라고 느끼는 것 같다.
자식을 품고 사는 어머니 마음은 하늘이라고 별수 없이 근심 덩이를 안고 있나 보다.
나무의 꿈은, 산 채로 하늘에 오르는 거다. 하늘은 나무의 본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