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이해인

시인묵객 2016. 3. 3. 07:00

 

 

 

봄이 오는 길목에서 / 이해인

 

하얀 눈 밑에서도 보리가 자라듯

삶의 온갖 아픔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씩

푸른 보리가 자라고 있었구나.

 

꽃을 피우고 싶어

온몸이 가려운 매화 가지에도

아침부터 우리 집 뜰 안을 서성이는

까치의 가벼운 발걸음과 긴 꼬리에도

봄이 움직이고 있구나.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과 함께

 

내가 일어서는 봄 아침

내가 사는 세상과

내가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새롭고 소중하여

고마움의 꽃망울이 터지는 봄

 

봄은 겨울에도 숨어서

나를 지키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