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가두의 시 / 송경동

시인묵객 2015. 12. 6. 08:00

 

 

 

 

 

 

가두의 시 / 송 경 동

 

 

길거리 구둣방 손님 없는 틈에

무뎌진 손톱을 가죽 자르는 쪽가위로 자르고 있는

사내의 뭉툭한 손을 훔쳐본다.

그의 손톱 밑에 검은 시(詩)가 있다

 

종로5가 봉제골목 헤매다

방 한 칸이 부업 방이고 집이고 놀이터인

미싱사 가족의 저녁식사를 넘겨본다.

다락에서 내려온 아이가 베어 먹은 노란 단무지 조각에

짜디짠 눈물의 시가 있다

 

해질녘 영등포역 앞

무슨 판촉행사 줄인가 싶어 기웃거린 텐트 안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선 채로

국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는 노숙인들의 긴 행렬 속에

끝내 내가 서보지 못한 직립의 시가 있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녘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질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시인, 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