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풀잎의 고요 / 변 종 환

시인묵객 2015. 5. 3. 15:30

 

 

 

 

 

풀잎의 고요 / 변 종 환

 

 

낮아져서,

한없이 낮아져서

풀잎에 부는 바람이 될까요

 

물처럼 바람처럼 낮아지면

가벼운 생이 되어

흐르는 구름으로 떠다닐까요

 

광활한 세상

오직 당신의 지순한 사랑에

젖고 젖으면서

내가 살아갈 수 있다면

가슴은 기도로 열려있는

길이 될까요

 

길가엔 향기에 젖어있는

작은 풀잎들이 깃털처럼 흔들리고

멀리 묻혀서 사는 사람의 마을

닫혀있던 문들은 활짝 열리겠지요

 

낮아져서

끝없이 낮아져서 내가 머무는 곳

풀벌레 소리에도

여린 눈물 자국을 남기며

떨고 있는 누군가의 말소리 들리겠지요

 

(·시인,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