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시인묵객
2013. 11. 26. 19:30
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 경 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던,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꺼내들고
어머니 볼에 따뜻한 순면을 문지르고 있다
안감이 촉촉하게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한
무늬였음을 오늘은 죄 많게 그 꽃무늬가 내 볼에 어린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 순간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던 것처럼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으리라
빨랫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 송이 몇 점 다가와 곱게 물든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맑은 꽃물이 똑똑 떨어진다
눈덩이만한 나프탈렌과 함께 서랍 속에서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 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는다